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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

편집부   
입력 : 2018-02-26  | 수정 :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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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단단하고 뾰족한 모든 물질마저 무상(無常)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시간이니까요. 세월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속절없이 변화시키고 모든 물질의 덩어리들을 무력화시켜 흙으로 되돌립니다. 시간이라는 그 무한궤도의 열차는 모든 물질세계를 성주괴공으로, 생명세계를 생노병사로, 정신세계를 생주이멸로 윤회시켜 버립니다. 각각의 사연과 경과만 있을 뿐 모든 것들을 흐트러뜨리고 무뎌지게 하고 부드러워지게 하고 마침내 무(無)의 세계로 공(空)의 세계로 나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 각각의 인연에 따라 새로움이 생(生)합니다.

지난 연말에 개봉해서 누적 관객 수 1,400만을 훌쩍 뛰어넘은 ‘신과 함께–죄와 벌’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같이 공감하고픈 가슴에 남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엔딩 부분에 염라대왕[영화 속 배우, 이정재]의 대사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있고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중 일부만이 용기를 내어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또 그중 정말 극소수가 진심으로 용서를 한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후회만 하고 끝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참회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용서와 관용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원작 󰡔사피엔스󰡕 라는 책에서는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진 호모사피엔스의 특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호모사피엔스 보다 훨씬 앞 시대에 지구상에는 네안데르탈인 존재했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체격 조건이 좋고 크고 강인했었는데 이들은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이후 멸종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고대 사피엔스들이 과격할 만한 인종 청소를 펼쳤을 가능성 때문이었다고 저자(著者)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관용(tolerance)은 원래 사피엔스의 특징이 아니며, 현대의 경우를 보더라고 사피엔스 집단은 피부색이나 언어, 종교의 작은 차이만으로도 곧잘 다른 집단을 몰살하지 않는가?’ 라고 주장하며 그의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적인 연구와 증거 자료들이 더 필요한 주장일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만 상당히 흥미 있고 유의미한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여하튼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모든 다른 인간종들을 소멸시켰으며 최후의 인간종으로서 세상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들의 후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태생적으로 관용과 용서를 베푸는 그러한 DNA 유전인자가 결여되어 있던지 혹은 부족한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책 속의 다른 부분에서 종교를 언급하면서 불교는 신을 섬기지 않고 법(Dharma, 다르마)으로 알려진 자연법칙(The Law of Nature)을 가르치는 종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자비라는 이름으로 관용과 용서를 가르치는, 종교라는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은, 호모사피엔스 종의 진화에 유일한 희망을 전하는 철학이 아닐까요?

영화 속 염라대왕의 말처럼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극소수의 사람만이 용서할 줄 안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우리 인간들의 태생적 모습이겠습니다.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그러한 태생적 결함을 안고 태어난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우리 인간 중에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생각건대, 그건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사람 즉 ‘용서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고 봄기운이 돋고 초목에 싹이 트는 계절 3월입니다. 이제 겨우내 땅속에 동면하던 동물들도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얼어있던 모든 것이 풀리는 계절이고 새로움이 움트는 시간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육도윤회 속에서 사람은 업(業)으로 인해 맺어진 것을 풀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서로에게 맺힌 것을 풀어야 새로움이 움트고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얽히게 되면 서로가 불편하게 됩니다. 너그러움과 용서는 상대방의 상처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빗장도 열게 합니다. 일단 마음의 문이 열리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드나들 수 있겠지요. 그리고 내 마음의 그릇을 키웁니다. 이것은 사람이 꽃피는 소식이고 성숙해 가는 소식입니다. 새잎이 펼쳐지는 눈부신 계절처럼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내 마음의 좋은 기운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우주의 밝은 에너지를 가슴 가득히 채워야겠습니다. 용서와 관용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힘입니다. 더 많은 호모사피엔스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우리가 되기를 서원합니다.

보성 정사/시경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