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 정사-알기쉬운 교리문답

편집부   
입력 : 2015-07-16  | 수정 :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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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지혜는 어떻게 다른가요?

아시다시피 철학이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인 ‘필라소피아(philosopia)’입니다.

이 원어를 ‘애지(愛智)’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요, 그것은 ‘지혜(sopia)를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지식의 사랑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이, 즉 현자(賢者)가 되는 데 철학의 목적이 있다는 얘기죠. 지식 만능의 과학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대목입니다.

소위 가방끈이 긴 사람을 엘리트라고 하지요. 학력이 높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엘리트라 자부하는 이라도, 반드시 그 사람이 지혜롭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지식이 있는 사람을 ‘학자’, 지혜가 있는 사람을 ‘현자’라고 일반적으로 구분해서 말하듯이, 학자와 현자는 엄연히 다르거든요.

지식과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학문은 도둑질이에요. 지식은 남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잖아요. 어릴 적부터 남의 것을 갖다가 자꾸 내 머릿속에 넣으려 애를 써 왔으니 어른이 되어서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수밖에요. 반복적 암기와 주입식 교육의 부작용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지혜는 달라요. 지식은 단순히 아는 것으로 끝나지만, 지혜는 그 이상이거든요. 부처님께서 “어리석음은 모든 죄의 근원이요, 지혜는 모든 선행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지혜는 우리에게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올바른 판단과 인식을 심어주고, 어떻게 사는 길이 인생의 행복인가를 알려 주며, 삶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 줍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임을 알아야 해요.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법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를 깨쳐서 아는 것은 태양과 같이 밝아서 무한(無限)하고, 낱낱이 배워서 아는 것은 박학(博學)이라도 유한(有限)하다.”(실행론 2-4-1)

낱낱이 배워서 안다는 것은 머리를 써서 분석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를 깨쳐서 안다는 것은 실천해보고 온몸으로 안다는 뜻이지요. 만약에 수행자가 사상과 학문으로써만 진리를 가늠한다면 그것은 지식적인 이해에 그칠 뿐입니다. 모든 지식을 살아있는 내 것으로 만들려면 생명적 행위로서의 전인적(全人的), 입체적인 체현(體現)과 긍정이 불가피한 것이죠. 그러니, 우리에게 삼밀수행이 절실한 것 아니겠어요?
세상살이의 지혜는 누구한테서 배우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평온한 마음에 머물러 생각을 쉴 때, 그 쉼의 깊이가 무르익어 감에 따라, 별안간 내가 사라지고 대상도 사라지는 무분별의 지혜가 궁극에는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찰나에 집중된 마음 상태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이 지혜가 바로 반야(般若)인 겁니다. 흔히 공성(空性) 즉 ‘텅 비어 있는 이치’를 깨달은 상태라고 말하지요.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지극정성으로 염송하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은 물러가고 자신의 본래 마음인 자성(自性)을 깨닫게 되어 지혜가 밝아지고 도량이 넓어져서 생활 중에 일어나는 좋고 나쁜 모든 일에 동요되지 않는 평정심이 일어납니다. 진언행자 모두가 정진하고 단시하여 얻은 반야의 지혜로 이고득락(離苦得樂)의 밀엄정토 이루길 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