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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농사가 ‘제일 큰 농사’라는데

편집부   
입력 : 2010-07-14  | 수정 : 201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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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른들이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두 가지가 있었다. 논에 물 대는 것과 자식 입으로 밥 들어가는 장면이 그것이다. 먹고 살기 바빴던 시절, 농사 잘 되고 자식 굶기지 않는 것 이상의 절대적 가치는 없었던 것이다. 자식 키우는 일은 자연스레 ‘자식 농사’가 되어 ‘제일 큰 농사’ 대접을 받았다. 인간의 손길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수작업인 농사 중에서도 제일 힘들고 고귀한….

그런데 후대 어느 때부터 ‘큰 농사’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법칙을 잊어버렸다.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위대한 진리도 망각했다. 사랑과 정성을 쏟는 과정보다 수확량이라는 결과에 급급해 땅을 닦달했다. 성장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체질에 맞지 않는 비료를 무차별 투하하고 못생기고 맛이 없다며 작물의 유전자를 바꾸는 무서운 실험도 했다.

며칠 전 트위터를 뜨겁게 달군 자살 사건의 주인공이 ‘잘못된 농법’의 대표적 피해자다. 한 외고생이 베란다에서 투신하면서 엄마에게 ‘이제 됐어?’라는 단 네 글자로 된 충격적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당신이 요구한 성적에 도달했으니 만족하느냐는 냉소적이면서 슬픈 의문부호는 역설적으로 어떤 공포와 고독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뉘앙스마저 풍긴다. 엄마는 자식의 생명을 담보로 성적이라는 허깨비 장난에 놀아난 결과를 보였으니…. 자식 농사를 노후설계(?) 쯤으로 착각이라도 했단 말인가.

이쯤 되고 보니 인터넷에는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4가지 조건’이라는 망령된 이야기까지 화제가 된다. 할아버지의 재력, 어머니의 열성, 아버지의 무관심, 형제들의 희생이 필수사항이란다. 특히 아버지의 무관심이 중요하다는데 그 이유가 가관이다. 아빠가 쉬어가며 공부하라고 참견이라도 하면 엄마로부터 단단히 교육받은 아이가 헷갈려하기 때문이란다. 마마보이가 돼야 명문대에 갈 확률이 높다는 ‘믿기 싫은’ 아니 ‘듣기 싫은’ 소리다.

현실이 그러니 어쩌겠느냐는 말은 잠시 멈추자. 좋은 대학을 나와야 취직도 하고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도 일단 쉬어가자. 그리고 한 번 뒤돌아보자. 크게 자라긴 했어도 허우대만 껑충한 작물은 아닌지, 생각 없이 무성한 가지와 잎이 옆 작물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닌지, 흙만 건강하면 곡식은 알아서 큰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농사 중의 농사. 이제부터라도 올곧게, 제대로 짓자.

김홍조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