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마음 충전기
학교 공부보다 면접 준비가 더 재밌었어요. 당장 취업할 것도 아닌데, 입학하자마자 신입생 때부터 면접 질문 목록을 잔뜩 뽑아 두고 일기 쓰듯 생각을 적곤 했거든요. 내게 맞는 적성과 진로를 찾는 것만큼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에요. 하루에 하나씩 새로운 명언이 적힌 명언 달력을 책상 앞에 두고 자극을 받기도 하고, ‘나 사용 설명서’를 만드는 등 나의 하루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데 부단히 노력했어요. 면접관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연습하는 게 아닌, 내 인생의 방향을 잡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게 이후 면접에서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무기가 되었어요. 합격을 보장하는 답변은 모르지만,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오랜 시간 다듬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도 면접 질문을 보면 설레고 나를 향한 물음표가 반가워요. 면접에서 꼭 빠지지 않는 질문 중 스트레스 관리법에 대해 얘기를 해볼게요.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어...
2020-07-13
트로트와 시간 여행
요즘은 트로트를 들으며 추억에 젖어 울고 웃는 것이 휴식과 위안이 되고 있다. 가슴에 밥물 같은 물기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걸 보면 나이를 먹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 유년의 고향에는 아버지와 바다, 또래 친구, 그리고 트로트가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외할머니와 같이 살다가 할머니와 큰어머니가 사시는 초가의 호롱불이 빨간 백열등으로 바뀔 때쯤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밤마다 아버지는 우리 두 남매를 양팔에 안고 주인을 살린 개 이야기, 떡 할멈과 호랑이 이야기를 해주었고 발바닥이 따뜻해질 때면 ‘꼬꼬닭도 울지 말고 멍멍개도 짖지 마라’라는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군불을 때지 않은 방이 차가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슬픈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그르렁거렸고 까끌까끌한 수염으로 연신 동생과 나의 뺨을 꼭꼭 찔러대었다. 아버지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황성옛터’를 즐겨 부르셨고 술에 취하신 날에는 무거운 발걸음만큼이나 노랫가락도 ...
2020-06-22
다음보다는 지금
지금 고등학교 1, 2학년은 격주제로 등교 수업과 원격수업을 반복하고 있다. 고육지책이다. 그래서 단위 학교마다 고민이 많다. 금방 끝날 것이라는 전제로 순서를 바꾸거나 다음으로 미루는 방식으로는 그 시기에 일정 모양으로 완성해야 할 가치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학년제로 운영하는 일부 교과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은 물론이고, 같은 학반에서도 일부는 등교수업을 받고 일부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등교 중지 학생들이 다수 발생한 경우는 난감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는 ‘다음’보다는 ‘지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학교 안과 학교 밖에 있는 학생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동시에 수업하기도 한다. 또한 오프라인으로 하던 교육활동 일부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온라인에 적합한 교육활동을 새로 찾기도 한다. 최근에는 여러 고민 끝에 1, 2학년 희망자 학생들과 1년에 다섯 권 인문학 책 읽기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1차 도서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함께 ...
2020-06-08
나누면서 얻는 것
나른한 주말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분주해졌다. 엄마 지인이 날 위해 따로 챙겨 놓은 봄 코트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근처로 온 김에 방향을 틀었고, 민망한 빈손을 고마움으로 채울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백화점에서 새 옷 사주고 싶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건네 주셨지만 문 앞에서 여러 벌의 옷을 한 아름 받게 된 나는 착한 어린이 상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잔뜩 신이 났다. 쓰던 옷을 받은 게 아니라 취향을 물려받았다. 그것도 아주 고급 취향을! 첫 손녀로 태어난 나는 예쁜 옷을 많이 선물 받았지만, 새 옷보다 물려받은 옷에 손이 자주 간다. 두 살 터울 사촌 언니 때문이다. 얼굴도 더 뽀얗고, 양 갈래로 가지런하게 묶은 새침한 공주 같은 언니가 걸친 게 뭐든 좋아 보였다. 얼른 물려받고 싶은 마음에 언니가 빨리 크길 바랐다. 덕분에 남이 쓰던 물건에 대해 거리낌이 없고, 오히려 내가 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입어 볼 수 있는 기회이자 내 취향과 또 다른 시도를 ...
2020-05-25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출퇴근 길에 차창 너머로 보이는 철쭉, 영산홍, 벚꽃을 보면서 ‘봄이 왔구나’ 하던 때가 지난 밤의 꿈처럼 스쳐 간다. 며칠간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꽃비가 내리고 나더니 이제 파릇파릇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봄이 유난히 짧은 지역이라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없었지만 올봄엔 쉬이 저버린 꽃에 대한 안타까움이 유달리 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엔 학창 시절 이후로 잊고 살았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시구가 자주 입가에 맴돈다. 들판에 가득 핀 꽃을 보아도 인적 없는 휑한 거리를 지날 때도 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의 졸리운 눈꺼풀을 마주할 때도 이 시구가 내 가슴을 적신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시인은 얼마나 조국의 땅을 자유롭게 밟아보고 싶었을까? 땅을 밟고 땀을 흘리는 일상이 이렇듯 가슴 절절한 애환과 인고가 되어야 했던 우리 민족의 고통을 이 ...
2020-05-12
사회적 거리두기와 사회적 연대하기
감염번호 31번 확진자가 나오면서 우리나라는 순식간에 코로나19의 공포에 휩싸였다. 집단 감염의 우려 속에 학교가 문을 닫고 가게가 휴업에 들어가면서 그야말로 사회적 항상성이 멈춰버렸다. 코로나19는 연일 뉴스의 중심이 되었고 누적 확진자가 늘어날수록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커져갔다.위기의 순간을 대하는 지혜와 전문성이 없으면 혐오와 차별, 가짜 정보 등이 쉽게 판을 흔든다. 백신도 집단 면역도 없는 상태에서 자칫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같은 괴물이 등장해 한 도시와 국가가 붕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불안의 극단인 공포가 커지는 순간일수록 우리나라의 개방적 방역시스템은 빛을 발했다. 발병 초기부터 진단 키트의 신속한 개발과 승인 절차가 있었고, 교과서를 펼치듯 광범위하고도 신속한 검사방식으로 대응했다. 더구나 뛰어난 IT 기술로 확진자의 위치와 동선을 추적해 예상 전염 경로를 빠르게 차단해 나갔다. 드라이브 스루나 워킹 스루 같은 기발한 검사 시스템도 국제적인 눈길을 끌었다...
2020-04-20
꽃이 피듯이 우리 일상도 피어나길
불안과 공포감이 실린 긴급 안전문자가 또 울렸습니다. 다음 주 출근조차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우리 일상에 침투했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TV와 신문,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국가별로 치솟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극명하게 드러나는 나라별 대처법, 어수선한 분위기 속, 코로나바이러스에게 일상을 내어주고 집 안에서 웅크리며 잠잠해지길 기다릴 뿐입니다.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일시 멈춤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것이 잠시 멈췄습니다. 정치적인 움직임, 경제적 손실, 외교 문제 등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 대신, 소소한 일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 변화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돌아봅니다.나의 첫 재택근무직장인 5년 차, 3주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 내 확진자가 없는 상황에서 네이버웹툰의 발 빠른 대응으로 전 직원 모두 원격근무체제로 돌입했고 업무에 필요한 모니터, 컴퓨터 등 중대형 장비를 갖고 올 ...
2020-03-23
영화 감기와 코로나바이러스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믿기지 않는 이 현실 앞에 지금의 사태를 말해주듯 2013년에 개봉된 영화‘ 감기’가 떠올랐다. 영화는 밀입국 노동자들을 분당으로 실어 나른 남자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하고 그 후 동일한 환자들이 속출하는 데서 전개된다. 피를 토하며 죽어나가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정부는 바이러스의 이차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급기야 분당 폐쇄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지금의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과 이에 대한 대구봉쇄 여론의 형성과도 유사한 상상과 현실간의 거리- 어떤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이 상황에 대처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가 숙고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분당의 시민들은 무방비 상태로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일대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그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처절한 사투가 전개된다. 경찰차에 가로막힌 도로, 도시를 탈출하고자 하는 시민들...
2020-03-06
실패박람회
박경리 소설가가 생전에 젊은 대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하다가 ‘젊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이때 선생은 젊음이란 ‘어떤 잘 된 것을 보면 잘 됐다고 말을 하고, 잘못된 것을 보면 잘못됐다고 말할 줄 아는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젊다는 것은 그만큼 앞과 옆을 재는 머뭇거림보다 실천적 열정이 앞서는 시기이기도 하다.그러나 최근의 젊은이들이 처한 환경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많은 분야에서 경쟁은 치열하고 패자부활의 기회는 많지 않다. 당연히 작은 불공정에도 분노를 표출하지만 동시에 작은 실패도 두려워한다. 그러다보니 선택에 신중하거나 주저하거나 급기야 이게 결정장애가 아닐까 싶을 만큼 선택의 주체성도 급격하게 떨어진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물론 실패에는 고통이 따른다. 만약에 우리가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극한의 전쟁터라도 달려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살아...
2020-02-17
두 번째 청춘, 한 번뿐인 선택
치매에 걸리면 어린아이처럼 된다고 한다. 아이처럼 보살펴야 하고 그만큼 손이 많이 가기 때문 인데 꼭 치매에 걸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보살피던 존재에서 보살핌을 받는 존재가 된다. 그때가 되면,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온 시간에 저항하는 대신, 가슴 속에 묻어둔 청춘을 카세트테이프 돌리듯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은 시절을 배경음악 삼아, 더 많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걸 후회하거나 사랑받았던 순간을 아름답게 추억하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회고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과정은 자연의 이치지만 그 과정에서 한 번 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 삶의 궤도는 어떻게 달라질까? 다시 주어진 젊음으로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을까? 어떤 선택을 되돌릴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젊음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한 번 더 맛보는 발칙한 상상 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마치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다면?’ ‘어릴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로?’라는 질문처럼.. 독자로...
2020-01-31
간호철학을 생각하며
한 학기의 종강이 다가오고 있다. 연구실과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사색들에 갈증을 느끼며 쉼 없이 달려왔던 학생들과의 수업이 하나씩 하나씩 마지막 책장을 덮어가고 있다. 매 학기마다 보람과 아쉬움 속에서 맞이하는 종강은 단순한 업무의 종료가 아니라 생각의 키가 자라고 열매를 맺는 나무를 다듬는 일과도 같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길 위에 어느새 계절도 옷을 바꿔 입고 있었다. 여름의 뜨거웠던 열정과 가을의 찬란했던 축제들이 자신의 쉼터를 찾아 돌아간 들판은 바람과 낙엽의 소리로 물들고 있었다. 알싸한 공기와 나목의 초연함은 언제나 세상살이의 본질을 느끼게 한다. 이번 학기에는 ‘간호윤리와 철학’을 강의하였다. 간호철학 수업자료를 만들기 위해 철학서적을 찾아보고 논문도 검색하면서 고민해보았지만 결국은 ‘철학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철학에 대한 지식과 철학자들의 많은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철학을...
2019-12-30
우포늪과 즉흥성의 시간
오랜만에 우포늪을 찾았다. 별 다른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떠나온 길이었다. 첫 직장생활을 창녕에서 시작한 터라 우포늪 가는 길은 심리적으로도 먼 길은 아니었다. ‘동트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느닷없이 달리는 낭만적 여정은 아닐지라도 1억 년 전에 빚어낸 이 천연의 습지에서 이정표 없이 걷고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도화지에 찍어낸 데칼코마니처럼 물속에 비친 산들과 바깥의 풍광이 조화롭고 신비롭다. 물 위를 낮게, 물 아래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와 짝을 지어 날아가는 백로의 모습도 꽤 인상적이다. 물과 나무와 새들과 꽃들과 시작도 끝도 규정할 수 없는 길 위에 서 있자니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물론 내 눈에 안 보인다고 내 앞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들까지 마치 이곳이 인류의 시작점인가 하는 느낌, 그래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할 때 여기서 걸으면 스멀스멀 생기가 오를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처럼 나의 일상엔 가끔씩 즉흥성이 개입한다. 즉흥적으로 떠...
2019-12-16
엄마와 딸의 대화로 보는 세대 차이(직장 편)
밀교신문에 원고를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사이가 부쩍 가까워졌다. ‘글’이란 공통점 덕분이다. “이번엔 어떤 주제로 쓸 꺼야?”라며 묻는 엄마는 나의 든든한 1호 팬이자 검수자로서 소재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객관적인 피드백을 준다. 물 흐르듯 한 번에 척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면 좋으련만 글감을 선정하는 것부터 대체어를 찾는 과정까지 의견이 자주 부딪힌다. 이번만 하더라도 그렇다. “퇴사할 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로 소재를 정했을 때, 엄마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 이유에 관해 물었고, 내 답변을 듣고 이내 실망했다. 에어컨을 사러 갔다가 선풍기를 사은품으로 받아 온 걸 더 기뻐하는 꼴이라며 너무 소소하다는 게 그 이유다. ‘소확행’이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신조어로 밀레니얼 세대의 대표적인 소비패턴이다. 이는 직장이나 직업 선택에도 해당된다. 평생직장을 가슴에 품고 살아 온 부모님 세대와 달리 성적, 대학, 취업, 사회에서 인정받을 ...
2019-11-25
시험 감독의 추억
가을이 깊어가는 만큼 학생들의 학업 열기도 익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중간고사 기간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고 나면 한 학기가 다 가고 또한 학생들의 학업 성과는 시험 성적으로 나타나므로 공정한 시험절차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리하여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방지할 대책을 논의하고 시험 감독 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필자는 다양한 형태의 시험 감독을 해보면서 여러 가지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경험하였지만 시험 기간이 되면 다시 한번 교육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일화가 생각난다. 몇해 전, 시험이 종료 되고 며칠 뒤 학생 몇몇이 찾아와서 시험 시간에 누군가 컨닝을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학과에서는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하여 관련 학생들을 면담하고 결국은 전체 재시험을 치르기로 하였다. 전체 학생이 모인 자리에서 재시험을 치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대화하고 소명할 기회...
2019-11-11
경계의 경계
오래 전에 ‘대왕 세종’이라는 대하드라마가 있었다. 왕자인 충녕이 왕의 재목으로 성장하던 시절이다. 정인지, 최만리 등 성균관의 젊은 유생들이 이 나라엔 아무 희망이 없다고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백성의 권리를 확장하는 정책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는 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충녕이 나타나, 실망하고 절망하는 거라면 그대들보다 내가 전배(선배)라고 너스레를 떨며 “절망이라는 건 말이지요, 있는 힘껏 꿈을 위해 뛰었는데 그래서 이제 더는 남은 힘도 없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부서지고 깨지고 무너지기만 할 때 그 때야 비로소 절망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직 우리에겐 좀 더 부서지고 깨질 힘이 남아 있다고 보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냐고 진지하게 되묻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경계를 짓는다. 이건 잘못됐고 저건 절망할 일이라고 규정을 한다. 그렇게 경계선을 서둘러 그어 버리면 편리한 측면도 있지만 새로운...
2019-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