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의도와 반응
중학교를 시험 쳐서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도시락으로 저녁까지 해결하면서 교실에 남아 같이 공부를 하였다. 잠시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담임선생님은 아침에 다들 어떻게 일어나는지 물으셨다. 몇몇이 “지금 괴물과 싸우고 있다.” “(라이벌) 누구를 생각한다.”(웃음)는 등 나름의 방법을 소개하였다. 가만있는 게 낫겠다 싶어 침묵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나를 지목했다. 얼떨결에 당시 내가 하던 대로 “그냥 하나, 둘, 셋 하면서 일어나는데요.”라고 답했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내심 우려하였지만, 그까지는 아니고 생뚱맞지만 일리가 있다는 정도의 선에서 무마되었다. 그 일화에 담긴 의미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어느 학자의 ‘무용담’을 통해 이해되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닐스 보어는 늘 활기에 찼고 온갖 스포츠 애호가였다. 틈틈이 서부영화를 즐겼는데 남들은 ‘영화니까…’라며 넘어가는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왜 주인공은 악당보다 늦게 총을 뽑으면서도 늘 이기는가? 그가 떠올린 가설은...
2016-05-17 10:15:38
피할 수 없는 인연이라면 즐기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수많은 인연과 만난다. 좋은 만남도 있고 나쁜 만남도 있다. 하늘과 땅이 만나면 지평선이 되고 하늘과 바다가 만나면 수평선이 된다. 산과 나무가 만나면 숲이 되고 산과 물이 만나면 계곡이 된다. 물이 수증기가 되기도 얼음이 되기도, 구름이 되기도 눈이 되기도 한다. 태어나면서 부모를 만나고 자라면서 형제를 만나고 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를 만나고 직장에 다니면서 직장 동료를 만난다. 공간과의 인연이다. 하루를 만나고 한 달을 만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나듯 유년기, 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인생의 사계절을 만난다. 시간과의 인연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과 헤어진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떠나고, 직장을 떠나고, 형제와 부모를 떠나고, 이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3월은 입학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졸업이 있다. 인생은 인연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고등학교까지의 졸업은 그래도 입학이 ...
2016-05-02 09:22:05
내 안에 늑대가 없다
연분홍 옷 속에 살포시 감추었던 꽃망울이 찰나에 한 그루 나무에서 피었습니다.향긋한 꽃향기는 어김없이 오랫동안 그러하였듯이 우리의 코를 자극하고 눈을 즐겁게 합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봄비를 만난 나무는 순식간에 짙은 초록의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주어진 만족에서 아름답게 정화하는 자연현상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도 저렇게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여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꾸밈없이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데 과연 나는 자연처럼 저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귀중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자신을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만 더욱 집착하는 탐착(貪着)입니다. 자연의 이치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도 가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더욱더 큰 문제는 많이 아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이시훈 시인은 ‘늑대 잡는 법’ 시(詩)에서 에스키모인들의 늑대 잡는 법을 이렇게 적었...
2016-04-18 14:37:19
보살의 정토
재벌 3세의 갑질 논란이 또 한 번 우리 사회에 충격파를 던졌다. 작년 한 해 40명 이상의 수행 기사가 교체되었고, 상습 폭언·폭행 증언과 함께 혀를 내두게 할 정도의 맞춤형 운전매뉴얼과 수행 가이드 일부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어느 비평가는 “보아라, 헬조선의 실상을”이란 트위터 멘트로 사태를 대변하였다. 비등하는 비난 여론에 당사자는 나름 최선의 언사로 공개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감정을 삭이고 찬찬히 사진 속 운전매뉴얼을 읽어보면 레이싱에 참가할 정도의 마니아답게 높은 수준의 운전 팁을 담았음을 알 수 있다. ‘물이 넘칠 정도로 가득 담긴 컵에서 단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의 정숙함을 요구하였다 하니 그 경지는 지극함 그 자체이다. ‘급회전 시 핸들을 감는 속도와 원위치로 오는 속도가 동일하게’ ‘곡선구간 주행 시 아웃-인-아웃 개념을 명확히 인지하여 최대한 직선구간처럼 주행’ 등 배울 것이 많아 매뉴얼 전체를 구해서 보고 싶을 정도이다. 그러기는 어려우니 ...
2016-04-01 09:12:51
말의 무게
연초가 되면 돼지저금통을 사서 동전을 모으는 습관이 있다. 물론 주머니나 집 구석구석 뒹구는 동전들을 넣을 곳이 필요해 저금통을 산다. 옛날에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저금통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길거리에 동전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전 정도는 눈여겨보지도 않는다. 집 안 구석구석 동전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연말이 되면 방마다 있는 돼지저금통을 모아 동전을 수거한다. 구형 십 원짜리, 신형 십 원짜리, 오십 원짜리,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각각 따로 모은다. 모양도 무게도 가치도 다르다. 때로는 외국돈도 슬그머니 끼어있다. 올해도 정리해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만 모아 은행으로 가서 환전을 하니 삼십여 만 원이다. 혼자 들기에는 버거운 무게다. 돈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는 순간이다. 환전을 하니 오만원 권 여섯 장의 무게와 비교가 된다. 돈의 가치만 생각하며 살아온 한 해의 끝자락에 선 오늘, 비로소 돈의 무게를 느낀다. 무겁다.혼자 느...
2016-03-16 09:21:25
작품의 삶
품(品)으로 끝나는 단어를 살펴보면 제품(製品), 정품(正品), 진품(眞品), 성품(性品), 명품(名品), 작품(作品) 등이 있다. 그중에서 작품(作品)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글, 그림, 음악, 조각 등과 같은 예술분야에만 국한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그러나 작품(作品)은 기계가 만든 물건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 만든 온전한 물건이자 진짜 물건이며, 사람의 성질과 됨됨이며, 그 무엇보다도 뛰어남을 의미한다.한 방송국의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하였다. 두 명의 여성 참가자가 연탄곡(두 사람이 같이 연주하는 것)을 연주하였다. 주어진 짧은 시간에 마치 한 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손가락이 디지털 피아노 건반 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면서 환상적인 호흡을 맞추어 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오디션이 끝나자, 한 심사위원이 입을 열지 못한 채 잠시 넋 나간 표정을 짓고는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오늘 놀라운 작품을 보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그리고는 그는 볼펜을 끄집어낸다. ...
2016-03-02 16:35:40
보상작용
지난 1월 말, 호주오픈 테니스대회가 끝났다. 남자부에서는 ‘조코비치 신드롬’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행사였다. 조코비치가 스스로 경기를 그르칠 리는 없기 때문에 상대 선수는 일생일대의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네티즌 표현으로는 ‘접신’을 하거나 ‘작두’를 타지 않으면, 이기기가 어렵다는 분위기 아래 대회가 끝났다. 2011년 이후 조코비치의 상승세는 놀라울 정도이다. 총 21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10번을 우승했고, 최근 5번 중 4번을 휩쓸면서 온갖 역대 기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 조코비치에게 5연패 중인 나달은 올해 초 카타르 도하 경기 후 “완벽한 상대에게 졌다. 이 정도 수준의 상대와 경기하기는 처음이다”라며 인정했다.2011년 이전의 조코비치는 늘 악전고투하였다. 체력과 감정조절 문제로 가끔 경기 도중 기권을 해야 할 정도였다. 천식과 심한 감기에도 종종 시달렸는데 온갖 노력이 별무소득이었다.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2010년 호주오픈 8강전에서 조코비치가 먼...
2016-02-16 14:33:35
즐긴다는 것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논어』 에 나오는 구절입니다.무엇인가 안다는 것,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즐긴다는 것...무엇인가 안다는 것, 어떤 일이건 대상을 보고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보다 실지로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 사람을 보다 행복하게 하고, 자신의 앎을 진지하게 만듭니다. 또 좋아함보다 더 나아가 즐기는 경지에 이를 때 생각이나 의식들이 내 삶을 풍부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삶에 대한 태도를 스스로 달라짐을 느끼게 합니다.사물을 보는 관점, 세상을 보는 관점은 사람의 생각과 의식, 사고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비유하기도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사람은 배우는 존재입니다. 배우고 익혀서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어울려 함께하는 이 사회에서 사람과의 관계도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헤아리게 되는 ‘변화’의 과정도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합...
2016-01-29 10:28:16
무제
어릴 적에 빙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간절하게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늘을 날고 싶다고, 하늘을 날게 해 달라고요.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도 가끔 하늘을 납니다. 물론 꿈속에서요. 육신이 붕 떠올라 이런저런 시공간을 유영하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짜릿합니다. 초능력자가 된 것처럼 우쭐거리면서 아직 지상에서 발을 떼지 못한 채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인간 군상들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또 어떻고요? 그렇지만 꿈은 곧 깨기 마련이고 저는 수직 낙하해서 현실로 돌아오곤 하지요. 그리고는 며칠 동안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자꾸만 하늘을 향해 헛발을 내딛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하늘을 날 수 있는 초능력이 제 안에 살아 있다고 믿고 싶은 게지요. 허 참, 난감한 일입니다. 아기도 아니고 나이가 사십 대 중반을 넘은 사람이 ‘초능력자’를 꿈꾸다니요. 미쳐도 단단히 미쳤습니다. 그러나 무엇 하나 “이거다!”하는 뻥 뚫린 시원한 ‘길’은 보이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말들과 거짓되고 왜곡된 액션들...
2016-01-11 09:52:22
무아에 어두워서
우연히 마음에 와 닿는 글귀를 보게 되었다.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자신을 규정하지 말라. 규정하지 않는다고 죽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 남들이 당신을 규정할 때 그들은 스스로를 한계짓고 있으므로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교육이 하는 일이란 게 온갖 검사나 시험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작업 아닌가. 학문은 또 온갖 대상을 규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말이다. 일상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번역서는 우리나라에 칭찬 열풍을 일으키면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그런데 원서 제목이 『고래가 해냈어!: 긍정적 관계의 힘』이었고 초기 제목으로 책이 팔리지 않자 ‘칭찬’ 모드로 바꿔 성공을 거두었다. ‘긍정적 관계’보다는 ‘칭찬’처럼 규정하는 어휘에 사람들이 호응을 한 것이다. 유명한 시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에서 ‘이름’도 곧 규정하기 아닌가. 한시라도 중단하면 죽을 듯이...
2015-12-17 10:11:19
12월에는...
가득 채워짐을 꿈꾸는 사회에서 바쁜 일상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는 익숙함에 편해져 소중함을 잊고, 매일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에서 순간의 소중함을 놓치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현재에 우리는 움켜쥐고 채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많이 내려놓고 비워서 ‘새로움’을 찾을 수 있다면 여유롭고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으로 12월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한해가 시작되면 항상 새롭게,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처럼 새로운 희망과 진실 된 마음으로 힘을 한껏 불어넣어 시작합니다. 2015년, 올 한해도 우리는 만물이 생장하는 따뜻한 봄처럼 시작하여 뜨거운 여름처럼 열정적인 마음으로 지내는 시간도 있었고, 쌀쌀한 가을이나 추운 겨울처럼 냉철한 판단으로 지내야 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올해의 검색어 1위가 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 증후군)’ 사태로 인해 국가적 위신이 추락하고 우리 사회는 충격적인 혼란을 경험하...
2015-12-02 10:20:19
꿈보다 소중한 현재
영화학도인 스무 살 아들이 최근 꾸고 있는 꿈은 세계 일주입니다. 다른 세상, 다른 패러다임, 다른 이야기, 다른 시공간과 대면하고 싶은 게지요. 꿈이 명품 자동차나 로또 1등 당첨이 아닌 것에 살짝 안도하면서도 무언가가 시큰시큰 시리게 올라오는 게 있었습니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말입니다. 한 때, 제 꿈이기도 했거든요. 세계 일주를 하면서 집시처럼 살다가 일찍 죽어버리겠다고 친구들에게 호언장담하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돌이켜 보니 말뿐이었어요. 세상이 우습고 만만해서 아무 데서나 그리고 아무렇게나 성냥불을 지익, 그어 태웠음에도 불구하고 꿈만큼은 이상하게도 겁쟁이였습니다. 꿈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았으니까요. 어려웠던 가정환경 탓을 하면서 꿈보다는 돈을 쫓아 살아왔습니다. 따지고 보니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고 말입니다. 모처럼 아들과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시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정말 하고 싶다면 미루지 말고 시작해! 비행기 티켓 값하고 비상금 정...
2015-11-16 10:04:10
인디언 기도법
설문조사를 보면 불교도들은 기도가 어렵다고 한다. 사실 스스로를 닦고 깨닫는 수행과 간구하고 의지하는 기도는 서로 다른 차원의 일처럼 느껴진다. 가끔 불교식 기도법을 접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수행과 조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는 통성기도를 하는 기독교인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그런데 고상한 바람도 드러내서 말하면 지나쳐 보이고 또 집착도 낳게 된다. 지극하되 속되지 않고 수행과도 조화로운 기도법은 없을까? 기도법의 원형을 찾아 안 가본 곳이 없다는 사람이 있었고, 그가 인디언 부족에게서 발견한 기도법이 곧 그러한 기도법이다. 그렉 브레이든은 인디언 친구의 기우 의식에 초대를 받았다. 산 위의 성소에서 엄숙한 의례를 한 후 몇 분간의 깊은 기도와 함께 의식이 끝났다. (그 후 비가 왔었고, 인디언 기우제는 실제로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아 ‘비가 올 때까지 기원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거창한 주술을 예상했던 브레이든에게 인디언 친구는 “비에 대해 기도했지, 비를 요구하지 않...
2015-11-02 18:56:31
가을과 공감(共感)하는 여백(餘白)
희미해지는 여름의 기억 틈새로 시월의 향기가 스며들어 어느새 옷자락에 가을이 채색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풍요로움의 계절, 결실의 계절인 가을은 마음을 풍요롭게도 하지만 왠지 잔잔한 마음의 아련함, 그리움이라는 정서가 더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계절에 우리의 감정도 규칙적으로 되풀이되곤 합니다. 계절에 따라 생활의 모습이 변하고, 생활의 모습이 변하면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에도 변화가 옵니다. 깊은 산사에서 새벽에 울리는 범종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나요? 깊은 산사의 범종의 울림에 여운이 퍼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여유롭고 편안하게 합니다. 아주 작고 여린 소리와 긴 침묵의 순간에 숨죽이는 더 큰 감정의 떨림을 느낄 수 있고, 가느다란 손가락의 미세한 동작 하나에서도 조그마한 떨림을 느끼며, 가슴을 저미는 느낌을 알 수 있는 우리의 감성은 내면에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인 ‘여백’이 있기 때문입니다.여백(餘白)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
2015-10-15 10:05:13
삶! 그리고 깊고 풍성한 이야기
두어 달 전부터 새벽일을 나가고 있습니다.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서 상급자의 차를 얻어 타고 출근해서 네 시 반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네 다섯 시간을 화장실 갈 짬도 없이 일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직원식당에서 삼십 분 밥을 먹을 수 있는데 그나마 바쁜 날에는 국에 밥과 반찬을 같이 넣고 국그릇을 입에 대고서 마시듯이 밥을 먹고 곧장 일을 시작합니다. 며칠에 한 번 침을 맞아야 하고 피로회복제를 상용하면서 그야말로 “침빨”, “약빨”로 하루를 견디고 일주일을 견디고 한 달을 견딥니다. 그렇게 일생을 견디겠지요. 사실 명색이 ‘소설가’라는 사람이 이렇게 투정을 부리는 것도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군대를 갓 제대한 사회 초년생들도 낼 모래 환갑을 바라보는 여사님들도 발바닥에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더 커다란 티눈이 박혀가면서도 절뚝거리지 않고 당차게 살아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를 악물고서 말입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서인지 요즘은 인쇄된 글자들하고도 친하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작품을...
2015-09-17 13:3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