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존이야기- 24.금강아보살

밀교신문   
입력 : 2019-03-11  | 수정 : 2019-04-12
+ -

번뇌를 부수어 없애는 보살

 

20190225092616_a449fd6af0d75904f3dc2252a8328906_cg53.jpg

 
  
코끼리의 윗니 중에서 앞니가 커진 것을 상아(象牙)라 한다. 입 양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상아는 온순해보이는 코끼리가 지닌 일종의 무기이다. 짐승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도 큰 상아를 가진 코끼리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이렇듯 상아는 초식동물인 코끼리로 하여금 맹수의 공격을 저지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기능을 지닌다. 여기에서 치아가 밖으로 돌출됨으로써 자아내는 위맹의 표현은 외부의 위협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힌두교에서 불교로 유입된 여러 존상 가운데 치아가 밖으로 돌출된 폭악한 형태의 대표적인 예로 야차를 들 수 있다. 야차는 형모가 추하고 괴이하며 사람을 해치는 잔인 혹독한 귀신으로 알려져 있기에 그 누구도 야차를 해치려는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다. 약차⋅야걸차 등으로 음역되며, 포악으로 번역되는 야차는 인도신화에서 북방 산악지대에 사는 구베라신(Kubera)의 권속이었으나 나중에 팔부중에 더해져서 불법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특정한 고유명사가 아니라 비사문천의 권속으로 재보를 지키는 귀신의 총칭이며, 후에 '대반야경'을 수호하는 16선신(善神)이 되기도 한다.

야차에 금강의 이미지를 추가한 금강야차는 대단한 위력을 가진 보살로 금강계 계통의 불교에서 창조된 명왕으로 인정되는데, 치아가 밖으로 돌출된 야차의 폭악한 이미지가 금강계37존 가운데 금강아보살에게 계승되었다.

금강아보살은 '금강정경'에서 ‘두루 보호하는 금강야차’, ‘사납게 씹어삼키는 금강아’라고 하며, 기타 다른 경전에서 ‘금강최복보살’, ‘금강의 덮개를 쓴 보살’, ‘모든 마군을 부수는 보살’이라 표현된다. 밀호를 조복금강⋅맹리금강⋅호법금강⋅금강야차⋅금강폭악이라 하는데 이들 명칭에서 야차가 지닌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음을 읽을 수 있다.

금강야차, 즉 금강아보살은 야차가 지닌 공포라는 방편으로 일체의 마구니를 두렵게 해서 준동하지 못하게 하는 존이다. 야차가 의미하는 바는 위맹의 뜻이며 또한 모두 없앤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외부의 공격만이 아니라 내부의 조복하기 힘든 번뇌도 그 대상이 된다. 실제로는 내부의 번뇌야말로 다루기 힘든 난조복중생이다. 우리가 번뇌로 힘들어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얻고 미워하는 것을 놓는 취사선택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마음 자체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 탐⋅진⋅치를 일으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탐⋅진⋅치 자체가 우리 마음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금강야차의 방편을 구해야 한다. 금강야차의 지혜로운 어금니는 일체의 번뇌와 수번뇌를 남김없기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마음속 번뇌에 관한 그 행위에 대한 단절보다는 스스로 일으킨 번뇌로부터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 이때 코끼리의 상아와 금강야차의 어금니는 외부의 마구니를 준동하지 못하게 막을 뿐만 아니라 내부의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상징성을 드러내어준다.

'금강정경'에서 우리 마음 내외의 마구니를 항복시키는 금강아보살의 출생을 밝힌 문단은 다음과 같다.
“이때에 세존은 다시 최제마대보살삼매에서 출생한 갈마가지의 금강삼마지에 들어가시니 이 명칭을 일체여래의 방편삼매라 한다. 곧 일체여래심이다. 자심으로부터 내어서 이 진언을 송한다.
 일체여래심으로부터 내자마자 덕을 갖춘 지금강자는 금강의 거대한 어금니의 모습을 이루고 출현하고 나서 일체여래의 폭악조복 등의 사업을 행하고, 일체부처의 신통과 유희로써 널리 시여하시고 나서, 저 모든 마군을 굴복시키는 성품은 금강살타삼마지에서 아주 견고하게 합하여 한 몸이 되어 최제마대보살의 몸을 출생한다.”

위 경문을 통해서 금강아보살은 바로 모든 마군을 굴복시키는 최제마보살로서 마음속에 번뇌를 품은 중생을 붙잡아 그 번뇌를 눌러 교화하고자하는 방편삼매에서 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위경'에는 다음과 같이 그 방편삼매의 유출경위를 설한다.
“비로자나불은 내심에서 금강약차방편공포삼마지지를 증득한다. 자수용인 까닭에 금강야차방편공포삼마지지로부터 금강아광명을 유출하여 널리 시방세계를 비추고, 굳세어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항복시키고, 보리도에 안치한다. 돌아와서 한 몸에 거두어져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삼마지지를 수용케 하기 위하여, 금강약차보살의 형상을 이루고 불공성취여래의 왼쪽[東] 월륜에 머문다.”
 
인용문에서 보듯이 금강아보살은 금강약차와 동체가 되며, 최제마보살이기도 하다. '이취경'에서는 능조지지권여래(能調持智拳如來)가 최일체마보살의 이칭으로 나온다. 지권으로 일체의 악마를 꺾어 부수는 여래라는 의미이다. '금강정경'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문이 나오는데 ‘금강야차를 성취함으로 말미암아서 금강야차와 동등하여 다름이 없게 된다'고 하며, ‘금강아의 뛰어난 인계를 결하게 되면 온갖 마구니와 악한 자를 부술 수 있다’고 하는 데에서 내외의 모든 번뇌를 방편공포삼마지의 광명으로 조복하는 금강아보살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번뇌를 끊음에 있어서 드러나는 단호한 의지가 금강아보살의 어금니가 의미하는 바이다.
 
다시 '제불경계섭진실경'에는 용맹한 금강야차의 공능을 다음과 같이 설한다.
“나는 금강약차이다. 이른바 모든 부처님의 대방편력신통변화이다. 나는 입 가운데에 금강의 날카로운 어금니가 있다. 일체의 삿된 견해를 가진 자와 큰 두려움을 부수고, 모든 마구니의 원한을 없앤다. 내 몸은 오색이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 온갖 중생, 시방세계 또한 다 오색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 금강권인을 결하고, 좌우의 새끼손가락을 서로 굽혀 입에 붙이고 두 검지를 펴서 좌우의 뺨에 두니 이는 날카로운 어금니의 모습이다. 금강야차의 공포삼매야를 증득한 금강아형(牙形)으로 장애를 제거하는데 진력한다는 뜻에서 분노형을 한 야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부처의 교화사업을 달성하는데에 있어서 삿된 견해를 고집하여 교화하기 어려운 존재들을 붙잡아 교화하기 위하여 무서운 형상을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마음속에 고치기 힘든 번뇌도 굳은 다짐과 서원을 의미하는 분노형의 야차를 통해서 제어해나가는 것이다. 모든 괴로움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오는데 이 두려움을 벗어던진다면 온갖 괴로움은 떠나간다.
 
'일체비밀최상명의대교왕의궤'에는 번뇌를 멸하는 금강아보살의 공능을 다음과 같이 찬탄한다.
 
“날카로운 어금니로 죄업을 씹어삼키듯
모든 번뇌 멸하는 뜻도 역시 그러하네.
번뇌 끝나기에 묘용 이루니
이것이 바로 금강아보살이다.”

이와 같이 금강아보살은 어금니라는 상징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우리 마음속 번뇌를 완전히 부술 수 있도록 하는 정진을 표현하고 있다. 금강아보살의 아는 금강의 날카롭고 힘센 어금니로서 단단한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것을 보살의 자유자재한 대방편력으로 일체의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의 미혹과 온갖 큰 두려움과 마구니의 원한을 부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약출염송경'에는 양손의 두 손가락을 세워서 돌출된 치아모양을 하는 ‘금강아의 인계를 결함으로 말미암아 이 금강은 더 한층 잘 부술 수 있다’고 그 결인의 공덕을 설한다. 삼매야형은 가로로 누운 횡저 위에 2개의 날카로운 이가 있으며, 반삼고저 2개를 기울여 세운다.

 앞에서 보생여래 해탈륜에 속하는 금강소보살의 삼매야형으로 나타난 이[齒]는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앞니였는데, 불공성취불의 해탈륜에 속하는 금강아보살의 어금니(牙)가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기능을 의미하는 것이 같은 치아를 삼매야형의 소재로 하면서도 다르게 활용하는 면을 보여준다.
 
 
24.jpg
금강아보살

 

김영덕 교수/ 위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