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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수업의 재발견

밀교신문   
입력 :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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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운명처럼 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젊고 건장한 남자 체육선생님이었다. 여학생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고, 남학생들 역시 많이 좋아하고 따랐다. 나도 그 중 한 학생이었다. 이유는 달랐겠지만 남학생들이 좋아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체육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수업시간에 항상 동작을 직접 보여주고 함께 부딪히며 땀 흘렸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선생님이 친구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고 결국 나도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교사가 된 첫 해 학생들을 인솔하여 스포츠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바로 그 자리에 은사님이 계셨다. 영화 같은 재회였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으신 선생님은 지금 이 자리에 첫 제자가 동료교사로서 함께 탑승하고 있다고 나를 소개했다.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현재 나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체육선생님일까? 항상 내 자신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초임교사 시절에는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완전한 착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무게감과 함께 책임감이 느껴졌다. 내 가치관과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영향이 미쳐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꺼져가는 소명의식을 되살리기 위해, 교사가 되고자 했던 초심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쳤고 그 노력 중 하나가 바로 교과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사유(思惟)하는 것이었다.
 
체육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운동에 대한 이해와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공부하고 경험한 내용으로 이제 제법 그럴듯하게 체육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나름대로 전문용어를 섞어가며, 최신의 연구 결과를 들먹이며 있어보이게(?) 설득할 수 있다. 왜 유소년스포츠와 노인스포츠가 중요한지, 왜 유산소운동이 필요한지, 운동은 어떻게 해야 효과적이며 근육은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대해 친절하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체육을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껏 내가 가지고 있던 이러한 생각이 반쪽짜리 사고였음을 비로소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신체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가 인정한다. 건강한 삶과 운동은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인터넷 검색이면 관련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TV를 켜면 멋진 몸매를 드려낸 사람들이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달하고, 운동선수들의 드라마틱한 경쟁 장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운동의 세계로 손쉽게 빨아들인다. 시대가 이러한데 나는 자칭 체육전문인이라는 사람이 학생들에게 체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강조해왔다. 교육과정에 있는 핵심내용을 전달한답시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만 강조해온 것이다. 그렇게 재미없게 체육을 가르쳐놓고, 체육을 등한시한다고 학생들을 탓해왔다.
 
지난 추석연휴기간 갖게 된 부친과의 대화에서 나의 체육수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체육교사인 아들에게 체육의 중요성과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소리 높여 강조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나의 체육수업을 반추해보았다. 맞다. 나의 역할은 체육을 잘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운동이 왜 중요한지 몸소 보여주고, 움직이며 뛰어 놀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직접 동작을 보여주고, 함께 부딪히며 땀 흘려야 한다. 그 안에서 체육의 가치와 중요성을 가르치고 강조하며, 배려와 협동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퍼슨십을 길러주고 패배를 인정하며 승자를 축하해 줄 수 있는 건강한 경쟁의 경험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체육수업이 활기차게 되려면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수업내용이‘재미’있어야 한다. 언젠가 교직원 연수 중 교장선생님께서 수업개선에 대한 분위기를 전하며 하신 말씀이 불현 듯 스쳐지나간다.“우리가 TV채널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3초입니다. 재미가 없으면 바로 리모컨을 누릅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교실에서 50분 동안 채널 선택권이 없습니다. 깨어있는 수업을 위해서는 수업 방식에 대한 변화가 요구됩니다.”중학생 시절 내가 경험했던 재미있는 체육시간을 우리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다. 계속 연구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체육수업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렇게 내 수업시간은 학생과 교사 모두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스포츠퍼슨십(sportspersonship)으로 표현함
 
손성훈/진선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