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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화가 나신다고요

밀교신문   
입력 : 201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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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살님이 화병이 나서 너무 괴롭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자녀에게도 화가 나고, 남편의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난다고 하는군요. 순간순간 가슴이 답답하여 숨이 막히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괴롭지만 병원에 가보아도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면서 무척 괴로워하십니다. 대화를 해보니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오래 전 그 보살님 시대에서는 흔했던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큰 원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 시대 남자들이 대체로 그러했듯이 보살님의 남편도 아마 적극적으로 아내 편이 되어 주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옛날 시집살이가 어디 만만했겠습니까?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 할 말이 있어도 입을 열 수 없었던 시대에 무심코 내뱉은 시댁식구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파고들어 차곡차곡 쌓여 왔을 겁니다. 잊어버려도 좋을 쓰레기 같은 말들을 가슴에 꽁꽁 담아두고 있었으니 화병이 날 만도 하지요.

 

버리세요. 그 쓰레기를 왜 보물처럼 가슴에 두고 사세요?”

 

버리기 수행을 권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 보살님이 다시 저에게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수행을 했더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했습니다. 안색도 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또 문제가 생겼답니다. “예전에 쌓인 화는 다 풀었는데, 아직도 시시때때로 화가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옛날처럼 가슴에 품고 삭여야 할지 아니면 화를 내버려야 할지요.”하시는 겁니다.

 

정말이지 화란 놈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에게 끊임없이 다가와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진심을 다스리는 것이 해탈의 지름길이라 하시어 별역잡아함경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부처님을 찾아와 갖은 욕을 퍼부었습니다. 바라문교를 믿는 그의 일가친척들이 불제자가 되자 화가 나서 부처님에게 따진 것이지요. 젊은이가 침을 튀겨가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댔지만 부처님은 조용히 그 욕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제풀에 지친 젊은이가 욕을 멈추고 잠잠해졌습니다. 그제야 부처님은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했는데 손님이 먹지 않으며 그 음식은 누가 먹겠소?”

 

저나 제 식구들이 먹겠지요.”

 

아까 나에게 많은 욕을 퍼부었지요? 그런데 나는 그 욕을 받지 않았소. 그렇다면 그 욕은 내 것이 되겠소, 아니면 당신 것이 되겠소?”

 

젊은이는 바로 꼬리를 내렸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화를 불러일으킬 행동을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화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화가 일어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보통 꾹 참고 쌓아두거나 화를 표출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대처합니다. 참고 쌓아두면 화병이 나거나 언젠가는 한꺼번에 터져 나와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당장 화를 표출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화를 낸다고 해서 상대방이 바로 네네하고 수긍하며 용서를 빌까요? 천만에요. 오히려 더 큰 싸움이 일어나 손해를 보게 됩니다.

 

'화를 표출하지도 말고 참지도 말라'. 그렇다면 화가 일어날 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참는 것은 고행입니다. 화를 표출하는 것은 쾌락입니다. 부처님은 쾌락과 고행은 결코 해탈의 길이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중도(中道)’만이 해탈의 길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화가 일어날 때는 바로 표출하거나 참아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화의 정체를 조용히 살펴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신에게 화가 왜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면 모두 자아에 집착하는 이기적인 마음인 아상(我相)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생각할 때 화가 나는 것이며 그 옳고 그름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달마는 동쪽으로 갔을까요, 서쪽에서 왔을까요? 인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것이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달마가 서쪽에서 온 것이 됩니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이란 개인, 지역,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미덕인 것이 서양에서는 무례함으로 보일 수 있고, 조선시대에 미덕이었던 것이 현대에서는 고루하게 보이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우리 불교에서도 옳고 그르다할 것이 애당초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화가 일어나면 그 원인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고집하고 있구나,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참회하면 화를 표출할 일도 참고 꾹꾹 쌓아두어야 할 까닭도 없게 됩니다.

 

쌓아둔 화가 있다면 먼저 깨끗하게 비우십시오. 화가 일어난다면 바로 표출하거나 참고 쌓아두려 하지 마시고 그 화의 정체부터 살피십시오. 그 화에 아상이 들어 있다면 참회하십시오. 참회수행이야말로 화를 잘 다스려 행복해지는 지름길입니다. 화가 날 때는 5분 이상 염송하는 것도 상책입니다.

 

소원이 있을 때 단시(檀施)하고 오른손으로 금강권을 하고 오분(五分) 이상 시간을 정하여 마칠 때까지 남과 말을 하지 않고 진언을 외우면 소원을 성취한다.”<실행론 49>

 

이행정 전수/보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