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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편집부   
입력 : 2009-02-26  | 수정 : 200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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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을 정리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양초들이 나왔다. 비닐 포장을 뜯지도 않은 양초들이 대부분이다. 길을 가다 색깔이 예뻐서, 향기가 좋아서 하나 둘 사다 들인 양초들인데 아까워서 차마 뜯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이렇게 양초를 좋아하게 된 데는 연유가 있다. 몇 해 전 인도 여행을 했다. 수도 델리를 벗어나 북부 쪽으로 갈수록 전력 사정은 심각했다. 도로의 가로등불은 언감생심 기대할 것도 없었고, 큰 상점이나 호텔에서는 자체 발전기를 돌려 불을 밝히고 있었다. 시골로 들어갈수록 문명과는 멀어졌다. 저녁 무렵이 되면 집집마다 소똥불을 피워 놓고 그들의 주식인 짜파티를 구웠다. 소똥불 주변에 모여앉아 가족들끼리 한담을 나누는 것이 정겹게 느껴졌다.

환한 전깃불에 익숙한 문명인이라 처음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바깥세상은 칠흑같이 어두우니 책을 읽거나 글 쓰는 외에는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밤마다 촛불을 밝혀 놓고 그날의 일상을 꼼꼼히 기록했다. 제법 두터운 대학노트 한 권을 준비해 가지고 갔는데, 한 달간의 여행 동안 그 노트 한 권을 거반 다 채워서 돌아왔다.

전등불이 없는 시골에서는 나의 생체리듬을 자연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태양 빛에 의지하여 내 일정이 짜여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구경을 나섰다가는 설핏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만약 전등불 아래였다면 다리가 아프도록 늦은 밤까지 볼거리를 쫓아다녔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생체리듬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에 맞추어진 것이다.

그리고 문명의 이기가 없는 시골에서는 시계조차 별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보리수 아래에서 언제 올지도 모를 버스를 하릴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동네 아이들이 나의 친구가 되어 같이 과자를 먹으면서 놀기도 했다.

양초를 정리하면서 문득 그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오늘 밤에는 전깃불 대신 촛불을 밝혀놓고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어야겠다.

문윤정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