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19

허일범 교수   
입력 : 2001-12-03  | 수정 : 200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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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금강계 육자진언신앙 1. 금강계 육자진언의 성립 금강계 육자진언은 옴마니반메훔 여섯 자에 금강의 법계를 구현하려는 다양한 의미가 부여됨으로써 성립하게 되었다. 그것은 밀교와 관련된 새로운 형태의 진언신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유포된 것으로 여겨진다. 본래 관세음보살의 본심미묘진언으로써 육자진언은 밀교적 요소가 가미된 금강계 육자진언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성립되었으며, 그 진언 자체만 가지고 밀교와의 관련성을 결부 짓는데는 무리가 있다. 관세음보살의 본심미묘진언은 오로지 수많은 불보살의 진언가운데 하나이며, 관세음보살의 진언 명호일 뿐이다. 그런데 육자진언의 발생연원을 밝히는 마니칸붐에 의하면 포타라궁전에는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육자금강의 소리가 가득차 있고, 금강과도 같은 법계의 지혜로 충만해 있으며, 그 곳 일월연화좌에 머무는 육자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중생계를 구원하기 위하여 가지를 베풀고 계신다고 전한다. 또한 그 곳은 오불의 다섯 지혜가 오색의 광채로 빛나며,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의 방편, 지혜가 하나되어 머무는 곳이라고 설한다. 여기서 우리들은 육자진언이 단순히 관세음보살의 본심미묘진언이 아니라 밀교와 깊은 관련을 가진 금강계 육자진언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육자존의 주처인 포타라궁전은 금강법계를 의미하며, 그 금강법계는 밀교경전에서 교리의 근간을 이루는 다섯 가지 지혜와 방편이 가득찬 곳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마니칸붐에서는 진언명호 옴마니반메훔에 다양한 공능을 부여하여 육자진언을 단순한 일존의 진언이 아니라 모든 진리를 포섭하는 포괄적 의미로 보고 있다. 즉 옴마니반메훔 여섯 자를 반야의 모체이자 보배구슬에 비유하여 거기에서 지칠 줄 모르고 나오는 광채는 지혜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고, 온 세상이 옴마니반메훔 진언으로 가득 찼을 때 법계평등의 자재와 대비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설한다. 나아가서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면 과거 부처님께서 법계를 관조하시고, 현세 부처님께서 중생을 이롭게 하시며, 미래 부처님께서 일체중생의 이익을 호념하시기 때문에 삼세천불의 상서로움이 온 세상에 깃든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훗날 몽골과 고려에도 영향을 미쳐서 독특한 양상의 육자진언신앙을 싹트게 했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서는 육자진언을 독송할 때, 그 진언독송의 이면에는 무량한 금강계오불의 가지력을 성취하기 위한 기원이 담겨 있다. 또한 건축물이나 법구의 장식에 육자진언을 채용하여 금강법계의 표현방식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2. 육자금강세계의 구현 인도에서 성립된 금강계 육자진언신앙은 티베트를 거처서 몽골에 들어가고, 그것은 다시 고려에 이르러 교리적으로 체계화되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신앙형태로 구현되었다. 먼저 육자진언신앙이 몽골전역에 유포된 것은 13세기 초 몽골이 징기스칸에 의해서 통일된 이후의 일이다. 그 때는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시기로 티베트불교가 몽골에 전파된 때이기도 하다. 몽골에 전파된 티베트불교는 민간신앙의 주류를 이루던 구복신앙을 바탕으로 육자진언의 유포를 한층 가속화 시켰다. 특히 육자진언에 담겨 있는 진언의 독송공덕은 몽골인들의 신앙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들이 아시아대륙을 석권하고,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불굴의 의지도 이와 같은 신앙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육자진언신앙은 굳건한 신앙심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몽골이 지배한 지역들에서는 육자진언신앙이 널리 유포되었고, 일본과 같이 몽골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은 지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육자진언신앙의 족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몽골에서 육자진언신앙은 일반 불교도들에게 고도의 교리나 수행체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전념하여 일상 속에서 염송하는 것만으로도 공덕이 일어나고, 삶의 의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에도 몽골에는 금강계 육자진언에 관한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남아 있다. 어느 사찰을 가든 건축물의 장식에는 육자진언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대부분 건축물의 안에 들어가는 입구나 단상에 놓인 법구류에서 발견된다. 그 중에서 카라코룸의 엘텐죠사원의 건축물에서는 육자진언과 금강십자갈마저, 보주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곳은 삼세의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조사들이 모셔져 있는데, 사원건축물의 둘레에는 육자진언과 금강보살진언, 조사진언이 연이어 쓰여 있고, 지붕은 금강십자갈마저와 보주, 천장은 다양한 종류의 금강계만다라로 장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원의 외형적인 모습은 육자진언을 통하여 금강법계를 이루려 했던 당시 사람들의 신앙심이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고려의 육자진언신앙은 주변 지역에서 전개된 신앙형태를 답습하면서도 또 다른 양상을 나타냈다. 특히 우리나라의 육자진언신앙은 티베트나 몽골불교와 무관하지 않지만 육자진언과 밀교경전의 교리를 조합하여 신앙 대상화하고, 수행체계화 했다는 점에서 그들과의 차별성을 발견할 수 있다. 현존하고 있는 역사적 자료로는 오대산 월정사에서 전승되고 있는 금강계만다라를 들 수 있는데, 그 만다라의 외곽원에는 육자진언이 쓰여 있다. 이것은 금강계만다라와 육자진언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으로 육자진언의 독송공덕을 통하여 금강계를 구현하려 했던 당시의 신앙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말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육자구수선정에는 육자진언의 공덕을 설하는 가운데, 이 진언을 전심으로 독송하면 육도의 윤회로부터 벗어 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금강계 오불의 국토에 태어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것 또한 육자진언과 밀교경전과의 관련성을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전거이다. 나아가서 고려시대에는 이러한 금강계 육자진언신앙을 바탕으로 마니콜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흔히 윤장대로 불리는 마니콜은 원래 티베트 특유의 법구로써 표면에는 육자진언인 옴마니파드메훔을 새기고, 내부에는 삼밀진언과 조사의 진언을 새겨 넣는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법구에 지나지 않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육자진언과 밀교가 결합된 하나의 신앙형태에서 나온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이러한 법구가 제작되어 명종 20년 경북 예천 용문사의 대장전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