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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편집부   
입력 : 2007-06-28  | 수정 : 200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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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배낭여행 중에 바라나시 강가의 화장터에서 시신들을 보며 나는 문득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라는 말을 내내 읊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죽음의 의미를 삶의 동의어로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죽음은 삶속의 그 어떤 이별보다도 완곡한 이별이다.

이태 전 이맘 때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 친구로부터 마지막 전화를 받았었다. 그녀는 나와는 여러 면으로 참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감성적이고 즉흥적이고 뜨겁고 겁 없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이성적이고 빈틈없고 침착하고 매사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다른 점들 때문에 우리는 서로 강하게 끌렸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민 1세로서 이십여 년간의 미국생활에 성공한,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예일대학에 다니는 예쁘고 똑똑한 딸과 능력 있고 자상한 남편, 전망 좋은 언덕 위의 대저택, 미국의 유명연예인들까지 꼭 들리던 그녀의 근사한 카페…. 그녀의 생활은 활기차고 밝고 아름다웠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 전화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아프다는 말을 들은지 육 개월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사십대 나이에다 항상 씩씩하고 명랑했던 사람이라 몹쓸 병에 걸렸다 해도 금방 회복될 거라 믿었었는데 곧 떠날 것 같다니, 마지막 전화라니….

"은경씨, 오늘따라 목소리가 더 이쁘네. 울지 말아요. 잘 사는 모습 보고 싶었는데…. 미안해요. 먼저 떠나서. 그래도 멀리서 꼭 지켜볼게요. 힘든 일이 있어도 좌절하지 말고 힘내요. 울지 말아요. 난 괜찮아…."

그녀는 울먹이는 나를 그렇게 마지막으로 달래주었다. 

"잘 가요."

어렵사리 입을 열어 내가 그녀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떠났다. 죽음은 정말 완곡한 이별이었다. 그러나 나는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읊조렸던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라는 말을 되뇌이며 그녀와 나의 그 완곡한 이별을 위로했었다. 그녀에게 정말 위로가 되었을까. 여하튼 나는 그녀가 보고 싶어질 때마다 나를 그렇게 위로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라고.

어제 나는 또 지인 한 사람이 먼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은경 /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