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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내기

편집부   
입력 : 2007-06-15  | 수정 : 200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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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개봉 직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내에게 한마디 던졌다. “이 영화 흥행에 성공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같잖은 장담이었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밀양’에는 평범한 관객을 감동시킬 스토리가 없었다.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는 내러티브가 분명했지만, ‘밀양’은 그렇지 않았다.

감동적인 장면도 찾기 어려웠다. ‘오아시스’에서 문소리가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나 설경구와 춤을 추는 지하철 판타지라든가, 경찰서에서 문소리가 말못하는 안타까움에 몸부림치는 장면 같은 잊지 못할 신(scene)이 ‘밀양’에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전도연의 혼신을 다한 연기와 눈에 띄지 않게 주인공의 캐릭터를 살려주는 송강호의 연기만 돋보였다. ‘신과 인간, 고통과 용서’라는 주제의식도 뚜렷하긴 했다. 주제를 극단까지 밀어붙였다고 하기엔 어딘가 미흡했으나, 한국 풍토에서 이만큼 내딛기도 쉽지 않은 작업인 것만은 틀림없다.

전도연이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직후 후배들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밀양’이 관객 160만 명(손익분기점)을 넘으면, 아니 100만 명만 들어도 술을 한잔 사겠다고 큰소리쳤다. ‘칸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이런 영화를 100만 명 이상 본다면 한국영화에 희망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영화를 통해서라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이만큼 된다면 한국사회가 여전히 살만한 곳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맥주를 한 잔 샀다. ‘밀양’은 칸 수상 후 2주일 만에 100만 명을 가볍게 돌파했다. 이대로라면 160만 명도 시간문제다. 어줍잖게 손가락 하나 날리지 않아도 되고, 우리 사회 ‘고통공감지수’가 아직은 안심할 만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뒷맛이 영 개운찮다. ‘밀양’을 보고나서 실망했다는 사람을 그 후에 줄줄이 만나고 있는 탓이다. 오늘 점심 같이 먹은 친구도 그랬다. 

양훈도/경인일보 주말판 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