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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라지는 걸까?

편집부   
입력 : 2007-05-17  | 수정 : 200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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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름 없는 존재가 있을까?

인간에게 인식된 세상 모든 존재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저마다 이름을 갖고 있다. 흔히 잡풀이라 불리는 작은 풀꽃 하나하나까지 몰라서 그렇지, 그 나름의 특성에 맞게 이름이 명명되어 있다. 특히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요한 이름이 어디 사람의 이름뿐이겠는가. 회사의 이름이며 상품의 이름이며 하다못해 동네의 구멍가게 간판까지, 이름을 짓는데 저마다 친화력 좋고 인상적인 이름을 지으려고 고민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상점가의 간판들 중에 이런 이름들이 눈에 많이 띤다. 신 헤어 매니저, 골드 피쉬, 게임 파크, 플라워 샾, 마일드 치킨, 러닝 피플, 엔젤스 커피, 럭키 마트, 그린 호프, 익스프레스 포트…. CitiBank, FeelLX, SH Lighting, Euro, Jeeny Bar, Palace, 2ME, Sope….

언젠가부터 세상은 글로벌시대가 되었다. 글로벌시대에 살려면 누구라도 영어를 배우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국제관계 관련 업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도 무조건 영어를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인사로 취급받는 분위기다. 너도나도 어디서든 영어 남발이다. 그러니 또 글로벌시대에 알맞게 영어이름 하나쯤 지어 갖는 게 유행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이클, 지미, 글로리아, 스테파니….

얼마 전 미국인인 한 친구가 서울시청에 다녀와서는 이런 말을 물어왔다. '한글이 과학적이고 우수한 글이라는 말은 뻥이었냐? 그러니 한국인들은 자기 나라 말과 글보다 영어를 더 사랑하는 것 아니냐?' 그 친구 목소리에 비웃음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시청에서 그가 본 건 무엇이었을까? 혹시 'Hi Seoul!'인가?

어느 언어학자가 지구의 언어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고 한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약 6천500여 개의 언어는, 그 중 4개만 남고 모두 사라진다. 그 네 개의 언어는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 중국어다.' 그의 예언이 맞게 되면 더 살기 좋고 편해지는 세상이 되는 걸까? 어쩌면 소통이 편해져 그런 면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문명의 발달이고 생활의 편리함이고 소통의 편함이고 뭐고 간에 앞서, 눈물나도록 가슴 찡해지는 것이다.

세상에 이름 없는 것들이 있을까? 존재마다 그 특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들이 아름답다.

 

강은경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