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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꽃샘

편집부   
입력 : 2007-05-17  | 수정 : 200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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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신은 대개 거칠다. 인도 신화 속 바유가 그렇고, 북유럽 신 오딘 또한 전투력 만점인 전사(戰士)다. 바유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산에 1년 내내 세찬 푹풍을 불어제낀다. 섬나라 스리랑카는 바유에 의해 떨어져 나온 그 산의 정상 부분이라고 한다. 영어 Wednesday(수요일)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오딘은 여러 신을 차례로 꺾고 신들의 왕이 된다. 모든 걸 날려버리는 한여름 태풍이나 매섭게 휘몰아치는 한겨울 북풍이 그런 이미지를 낳았을 듯하다. 물론 부드러운 면도 있다. 바유는 사람에게 지위와 재산을 가져다주는 신이기도 하며, 오딘 또한 농경을 수호하는 신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부드러운 바람의 신, 성질 더러운 바람의 신이 따로 있다. 제퓌로스는 서풍의 신이자 미풍의 신이다. 제퓌로스 역시 아폴론이 던진 원반을 그가 사랑하는 미소년의 머리를 향해 날려 죽게 할 만큼 잔인한 면이 없지 않지만, 정작 그의 문제는 타고난 바람기다. 꽃의 여신인 아내 플로라의 시녀 아네모네를 건드리려다 아내에게 들키는 바람에 아네모네는 꽃이 되었다. 그래도 제퓌로스는 그녀를 봄마다 찾아가 어루만져 줌으로써 꽃을 피우게 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조개에 태워 키프로스로 데려간 것도 제퓌로스고, 벼랑 끝에 선 프쉬케를 에로스에게 데려다 준 것도 그다.

심술궂기로는 제주도 바람의 신 영등할망도 빠지지 않는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내려오는데, 딸을 데려올 때는 딸의 예쁜 옷을 자랑하기 위해 강한 바람을 불게 하고, 며느리를 데려올 경우엔 며느리 나들이옷을 더럽히느라 비를 내리게 한다고 한다. 요 며칠 으실으실 꽃샘·잎샘비까지 내렸던 걸 보면 올해도 영등할망이 하늘로 올라가느라 그랬나 보다. 이젠 제퓌로스 같은 바람기 많은 봄바람의 신들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차례다.

양훈도 경인일보 주말판 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