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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인연

강은경   
입력 : 2007-03-02  | 수정 : 200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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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님, 딱 작년 이맘때였지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귀한 선물을 하나 안겨주신 날 말입니다. 찬바람에 세설 흩날리던 오후, 선생님 작업실에 들렀을 때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밖에서 꽁꽁 언 시린 마음과 몸을 녹일 따듯한 차 한 잔 내주시고는 손수 제작한 대금을 꺼내, 한 곡 멋지게 불어주셨지요. 저는 부드럽고 따듯하고 청아하고 장쾌하게 울리는 대금소리에 홀딱 빠져 차가 식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런 거 하나 가까이 두면, 사는 게 덜 외로워요" 하시면서, 그 날 제게 안겨주신 대금 한 자루. 정말 뜻밖의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대금은 보통 배우기 시작하고 삼 개월 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때려치울 정도로 소리내기가 힘든 악기라는 말을 들은 탓에 끈기 약한 저로서는, 더군다나 음악성이라면 완전 젬병으로 타고난 탓에 길게 붙들고 있지 못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짜증나고 힘든 고비고비 넘기며 내려놓지 않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저 자신 스스로 기특하다 여기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직 초보자지만 이젠 이 인연은 끊어내지 못할 거라는 단단한 애정을 느낍니다. 김 선생님,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대금을 배우면서 '정간보'라는 우리 전통악보를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국악에 '산조' '정악'이 있다는 것도…. 그러니 제가 우리 음악에 대해 갖고 있던 소양이 얼마나 얕고 부족했는지 두 말하면 지루해지겠지요. 비로소 저는 우리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찾아 듣게 됐고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곡보다 가야금이나 대금, 아쟁, 거문고, 해금 등 국악 곡들을 들을 때 더 깊은 감흥을 느끼며 즐기게 되었습니다. 한민족 정신과 혼(魂)의 소리들에 제 귀가 열려간다는 사실이 뿌듯할 지경입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와는 무관하다 싶었던 세계에 입문할 계기를 주셨고, 제 나라 음악의 우수성도 모르는 부끄러운 무지의 소치에서 벗어나게 해주셨고,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 말씀 따라, 사는 게 덜 외롭게 되었습니다. 다가올 어느 날 따듯한 차 한 잔 놓고, 제 대금 소리를 들으시며 선생님께서 흐뭇하게 미소짓는 모습을 감히 상상해봅니다. 선생님, 올해도 건강하시고요. 조만간 날 내어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