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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캠페인 유감

양훈도   
입력 : 2007-02-14  | 수정 : 200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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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독서캠페인이 요란하다. 북 모닝, 북 스타트, 북 마라톤…. 다양한 방식으로 책읽기 운동을 벌이는 직장과 학교가 부쩍 늘었다. 1년 가야 책 한 권 안 읽는 국민이 태반인 실정이고 보면, 하루 10분씩이라도 책을 읽자는 바람이 부는 건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득 아르헨티나 소설가 보르헤스(1899∼1986)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뭐라 했을지 궁금하다. 보르헤스는 '천국은 아마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했던 독서광이었다. 그가 지금 도서관 같은 천국에 가 있는지, 도서관 없는 지옥에 떨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으되,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니! 그건 숨, 숨, 숨, 숨을 쉽시다 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캠페인 아닌가?" 하도 책을 읽어 말년엔 시력마저 잃었던 보르헤스로서는 실소를 참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책 읽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과여야 할 중·고교 학생들에게까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10분 독서운동을 벌이는 판이니…. '장자(莊子)' 천도(天道)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책을 읽고 있는 제 환공(齊 桓公)에게 목수 윤편(輪扁)이 은근슬쩍 시비를 건다. "전하, 뭘 그리 열심히 보십니까?"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이 살아 계신가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아! 그러니까 지금 옛 사람의 찌꺼기를 읽고 계시는군요." "뭐라, 찌꺼기? 이놈이 어따 대고." "참다운 지식은 말이나 글로 전해지는 게 아니지요. 그러니까 찌꺼기 아닙니까?" 나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자의식이 들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자의 말씀이다. 책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가, 유용한 지식으로 가득 찬 창고인가. 확산되는 독서권장 캠페인이 매우 반가우면서도 왠지 모를 아쉬움이 짚이는 건 성찰 없는 강제독서만 판을 치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런데 보르헤스가 내게도 한마디 할 듯하다. "너나 잘 하세요!" 양훈도 경인일보 주말판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