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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정영희(소설가)   
입력 : 2006-11-14  | 수정 : 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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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왕따'였다. 아니 스스로 반 전체를 '왕따' 시켰다. 여고시절 혼자 책 보고, 혼자 사색하고, 혼자 걷는 아이였다. 걸어서 두 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거리를 혼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랬었던 아이였으니, 물론 동창 모임에 나갈 리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알 듯 말 듯한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졸업 삼십주년 '사은회'를 개최한다고. 우리학교에서 배출 된 문필가는 필자뿐이니 그날 와서 '축시'를 낭송하라고. 동창회장의 여러 번의 간곡한 전화와 방문으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그 날이 되어 한복을 입고 축시를 써서 낭송을 했다. 올해 출간된 필자의 졸고 '낮술'을 은사님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삼십 년 만에 만나는 동기들과 은사님들…. 감동적인 '사은의 밤'이었다. 평소 동창 모임을 우습게 여겼다. 여자들이 모여 수다를 떨다 가는 것쯤으로 비하했다. 물론 맞다. 여자들끼리 옷 차려 입고 괜찮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다 헤어진다. 한번도 '아줌마'들과 어울려 보지 않은 필자는 처음엔 거부감이 왔다. 그런데 몇 번 만나다 보니, 그 중에서 여고 때는 전혀 몰랐던 '보석'같은 동기 몇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겸손하고 지혜롭고 남의 아픔을 제 아픔인양 안타까워하고, 늘 남을 위해 봉사할 마음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 동기들 보는 재미로 나가기 시작해 이전 석 달에 한 번 만나는 동창 모임에 열심히 나간다. "너무 그렇게 볼 거 없다. 저 화환 하나에 몇 가족이 먹고 사는가를 생각해 봐." 경조사에 화환을 보내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필자에게 슬쩍 지나가는 말로 '보석'같은 한 동기가 말했다. 꽃을 키우는 화원과 꽃 도매상과 꽃을 파는 가게와 화환을 배달하는 사람들…. 필자는 부끄러웠다. 글을 씀네 하고, 세상은 위선과 허위의식으로 포장되어 있다고 늘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필자에게는 세상을 보는 지혜와 따뜻함이 부족했었다. 경조사에 서로 참석하여 애도하고 축하해 주고, 상부상조하며 사는 것이 낯설던 필자는 생각하는 게 많아졌다. 인간은 새처럼 하늘 높이 떠서 살 수도 없고, 호랑이처럼 산에서 홀로 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존재인 것이다.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던 필자는 '사은의 밤'을 치른 이후 동창 모임을 보는 사시(斜視)가 교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