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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공작

정영희   
입력 : 2006-09-11  | 수정 : 200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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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고등학교에 진학 할 때만 해도 입시시험이 있었다. 중학교는 추첨을 해서 들어갔고. 결원이 없어 고등학교 2학년 말에야 겨우 '따라지' 고등학교에서 전학 온 '뚱뚱하고 못 생긴'친구가 있었다. 아버지가 국립대학 학장이라고 했다. 모두들 그녀에게 무관심했고, 스스로도 열등감에 사로잡혀 아무와도 사귀지 못했다. 필자만이 그녀에게 말을 붙여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대학도 예비고사마저 떨어져 갈 곳이 없자, 필자가 다니는 학교에 '청강생'으로 다녔다. 물론 그 사실을 필자만 알았다. 졸업할 때 가운이 나오지 않아 모두들 알게 됐지만. 대학 졸업 무렵엔 '가출'을 해 집안이 뒤집어졌다. 한 달여 만에 찾아 집으로 데려온 딸을 그 부모는 두 달만에 받을 유산이 많은 '말더듬이' 뚱보남자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녀의 결혼식을 끝으로 필자도 서울로 와 버려 한동안 소식이 뜸했다.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들으며 잘 사는구나 여겼다. 그녀를 근 이십 년 만에 다시 만나 예전처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녀는 독실한 서양 종교인이 되어 있었다. 그 종교에서 자신은 '지도자'라고 했다. 처음엔 저렇게 독실한 신앙심을 가졌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하는 말이 모두 거짓말의 연속이었다. 평생을 가짜로 살아온 그녀가 자기합리화를 위해 그렇겠거니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이젠 교만하게 남을 업신여기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전에 '종교지도자'라 추켜 세워주고, 거기에 돈까지 많으니,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걸로 아는 '허위의식'에 경도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스스로 '자기신화(거짓말)'를 창조해 그게 진실인양 믿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컨닝'해서 잘 나온 성적이 진짜 자기 성적인줄 안다고. 그녀는 책은 물론 신문도, 뉴스도 보지 않는 '지적 저능아' 수준이었다. 필자의 경우는 이솝우화가 생각났다. 어느 날 까마귀가 공작 깃털을 주워 몸통에 꽂고 호수에 제 모습을 비춰보니 자신이 공작 같았다. 까마귀는 자신이 공작인줄 착각하곤 꽁지를 세우고 교만을 떨고 다녔다. 뒤에서 보면 치부가 다 드러나는 줄도 모르고. 세상은 이렇게 '자기 합리화'가 지나쳐 '허위의식'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가끔씩 자신을 깊이 성찰할 줄도 알아야 한다.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에겐 무리한 요구겠지만. 열등감 속에 있을 때 그녀는 오히려 겸손했고, 자신을 돌아볼 줄도 알았다. 제 스스로 고통 속에서 힘들게 깨닫지 않고 '종교와 부'를 통해 느닷없이 열등감을 벗어 던진 것이다. 열등감을 벗어 던지는 순간 교만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인지 모른다. 열등감이란 얼마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