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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양문규(시인)   
입력 : 2006-08-11  | 수정 : 200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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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폼 나고 잘 나가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지만, 세상 외진 곳에서 철저하게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는 것 또한 행운이다.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 많은 지인들로 하여금 코끝을 싸아하게 만드는 윤중호 시인은 후자 쪽 사람이다. 윤중호 시인을 만난 것은 1989년 여름 민예총 살림을 살 때였다. 그때 그의 행색은 산에서 금방 내려온 도사 같았다. 세속의 모든 것들을 비워버린, 속세에 전혀 뜻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비죽이 웃는 웃음 뒤에는 그의 새파란 자존심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여느 사람들처럼 무난하게 살지 못하고, 사연 많고 가슴 저리고 아프게 목을 외로 꼬고 떠돌며 살았다.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남의 아픔까지도 숙명처럼 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시인이었다. 시인은 일찍이 '우리 모두가 안쓰럽고 불쌍하기 짝이 없는 중생이라는 걸' 배웠던 것 같다. 윤중호 시인의 문학적 양식은 가난·소외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의 결을 구체적으로 살려내는데 있다. 시집을 비롯한 소설집, 산문집 등 여러 권의 저서에서 발견되는 문학적 주제는 여기에서 한 발짝도 비껴나 있지 않다. 이는 그가 문학을 지식으로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실천한데 따른 것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 2004년 9월 3일 이 세상을 하직했다. 췌장암 발병 40여일 만에 가난하고 외로운 벗들의 손을 놓고 쓸쓸히 외길의 삶을 마감했다. 8월 12일 윤중호 시인 작고 2주기에 즈음해 그의 고향에서 '윤중호 시인 추모 문학강연 및 시낭송회'가 열렸다. 평소 그를 사랑하고 아꼈던 선배, 동료, 후배 문인들이 모여 그의 삶의 자취를 기리는 자리였다. 악다구니 같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를 만나지 못하는 슬픔을 아쉬워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말벗이 말동무 길동무 되어주었던 윤중호 시인이 우리에게 더욱더 진한 그리움으로 남아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다. 살아 있는 자의 몫으로, 윤중호 시인의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삶의 발자취를 정리하고 기리는 작업은 역시 산자들의 몫이다. 그 길이 세상을 보다 세상답게 만드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