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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글 쓰세요?

정영희(소설가)   
입력 : 2006-07-26  | 수정 : 200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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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에 이름 석자를 올려놓은 지도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뀔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문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이십대 초반, 필자가 가지고 있는 잣대에 세계가 맞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적의를 드러냈다. 그러나 세계는 누구의 잣대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가진 잣대만큼 세계를 바라볼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미욱하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분노를 담은 발톱을 감출 줄도 알게 되었다. 분노와 적의를 드러내던 시절, 필자는 어리석게도 문학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맹신했다. 그러나 문학은 사회를 절대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문학은 사회에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을 약간 변화시킬 수는 있을는지 모른다. 그 변화란 것도 쓸데없이 번뇌에 휩싸이게 만들고 질문하게 한다. '왜'라고 질문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고뇌에 빠지게 되고, 고뇌하는 인간은 스스로 우월감을 가지게 될 뿐이다. 필자가 문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 떨려하는데 반해 이 시대는 문학을 도외시 한다. e 메일조차 문장이 길어 휴대폰 메시지로 편지를 대신하는 세상이 되었다. 또한 영상매체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문학작품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이고 문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인간적이고 오락적인 잘 만든 영화가 넘쳐나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니 누가 홀로 골방에서 외롭게 책을 보겠는가. 또한 소설읽기란 얼마나 괴로운가. 때때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고 수치심을 감내해야 하는 자아성찰이 뒤따르니 말이다. 책을 사지 않고 읽지 않는 그들이 너무나 이해가 잘 되어 글을 쓰는 직업인 필자가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문화예술 다시 말해 영화, 연극, 오페라,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의 기본은 서사구조(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서사구조의 원형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소설이다. 이렇게 소설을 홀대했다가 나중에 아무도 소설을 쓰지 않게 되면 우리의 모든 문화예술이 깡그리 무너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글 쓰세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필자에게 그런 질문을 가끔 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쓸쓸하고 외로워진다. 물론 소설가는 언제나 다음 작품을 쓰지 않는 한 이번 작품이 묘비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번 소설가는 영원한 소설가이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조차 소설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