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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목욕탕

정영희(소설가)   
입력 : 2006-06-14  | 수정 : 200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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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직도 겨울이 되면 대중목욕탕엘 간다. 수증기가 자욱한 대중목욕탕에서 땀을 흘리며 목욕을 하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서이다. 우리 동네에 소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대중목욕탕이 있다. 하나는 오래된 삼층 건물의 이층에 있고, 하나는 새로 올린 십오 층 빌딩의 지하에 있다. 당연히 새로 올린 빌딩의 지하 목욕탕의 시설이 훨씬 좋다. 크기도 세 배는 될 것이다. 필자는 물론 새로 지은 건물의 목욕탕엘 간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항상 조용해서 좋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표도 받고 음료수도 팔고 청소도 하는 아주머니가 갈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욕을 하며 청소를 했다. 그렇게 늘 화를 내고 욕을 하며 일을 하니 얼굴이 마귀할멈처럼 변해 있었다. 왜 사람들이 시설이 이렇게 좋은 사우나탕을 두고 오래된 이층 목욕탕을 가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손해인 것이다. 우선 자신의 얼굴이 미워지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요즘도 아이를 울려가며 때를 심하게 미는 젊은 엄마들이 있다. 특히 명절 전날 가게 되면 거의 지옥수준이다. 엄마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너 댓 살 된 꼬마의 우는 본세도 만만찮아 보였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기를 쓰고 울고, 수증기는 자욱하고, 앉을 자리도 없고, 바가지도 없다. 그렇게 아수라장인 곳에서도 바가지를 세 개씩 차지하고 절대 남에게 양보 못하는 여자가 있었다. 작은 바가지 하나와 큰 대야 두 개. 작은 바가지로 물을 퍼 큰 대야에 담아 썼고, 다른 한 대야는 자신이 들고 온 목욕용품이 든 바구니를 넣어 두었다. 필자가 보기에 목욕용품이 든 바구니는 그냥 바닥에 내려놓으면 되고, 굳이 큰 대야가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다. 필자는 작은 바가지 하나면 충분했다. 작은 바가지로 물을 퍼서 바로 몸을 씻으면 된다. 한 아주머니가 목욕용품이 든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대야를 좀 쓰자며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바가지 세 개를 차지한 여자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나중에 필자가 나올 때 쯤 그 여자도 같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 그저 자신이 가져갔던 목욕용품이 든 바구니만 들고 나왔다. 다 두고 나올 거면서 그렇게 욕심스럽게 바가지 세 개를 껴안고 싸움을 하다니…. 우리네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중목욕탕에서 작은 바가지 하나 깨끗이 쓰고 두고 나오듯,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