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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꽃이 피었습니다

양문규(시인)   
입력 : 2006-05-12  | 수정 : 200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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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亡草)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꽃으로 알려져 있다. 망초꽃이 무성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속설은,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해 개망초가 전 국토로 급속하게 퍼졌다는데서 설득력을 얻는다. 두보의 시에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요(國破山河在), 성안의 봄에는 풀과 나무만 무성하구나(城春草木深)'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 '농촌이 망해도 전답은 그대로요(農破田畓在), 농촌의 여름은 망초만이 무성하구나(農夏亡草深)'로 바꿔놓고 보니, 이 속에 농촌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듯하다. 산하(山河)와 전답은 민중들의 삶의 터전일진데, 그 논과 밭에 개망초만이 무성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논밭이 개망초로 덮이는 것은 곧 농사에 애착을 갖지 못하는 농민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곡물대신 빽빽하게 개망초가 들어서는 들판의 모습에서 개망초가 슬픔으로 비치는 것은 당연하다. 농민이 떠난 자리를 개망초가 차지함으로서 또 다른 아픔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개망초가 괄시와 멸시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저 개망초에 돌팔매질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개망초 꽃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자 한다. 농촌에 남아 있거나, 도시 변두리에 밀려나 초라한 삶터에서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면에서 개망초는, 자본에 떠밀려 괄시와 미움을 받으면서도 강인한 삶을 이루는 이 땅의 농민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유린당해 온 농업이 돈이 되지 않아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현실에서 개망초는 가난한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1'에서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노래한 바 있다. 농사의 근간을 이루는 강물을 누가 퍼간다고 해도 그 강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농촌은 일터와 삶터로 그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억만년 꽃을 피우고 지우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우리들의 꿈과 희망을 노래할 것이다. 먼 훗날 누군가가 다시 버려진 이 땅으로 찾아 들어와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푸른 물결로 하늘거리는 곡식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