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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왔는데

양문규(시인)   
입력 : 2006-03-29  | 수정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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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업화는 곧 공업화를 이루는 것으로 부의 상징처럼 여긴다. 그동안 농촌은 도시산업화 이행과정에서 전초적 기지로서 보조적 기능만을 억압적으로 수행해 왔다. 이후 산업화의 모든 자리를 도회지에 내어준 채 농촌사회는 무참히 붕괴된다. 결국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은 일차적 생산의 주체이면서도 밥그릇을 도시에 빼앗기고 만다. 이런 결과는 농촌을 희생양으로 삼아 부의 축적만 이루려는 경제적 상황논리에서 기인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의 농촌은 수입 쌀 문제로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밥 짓는 쌀로 사용될 미국산 1등급 칼로스 쌀 1천372톤이 3월 23일 부산항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반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쌀은 식물검역과 규격심사 등 통관절차를 거쳐 경기도 이천 유통공사의 창고에 보관된 뒤 4월 초순 경 공매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공급될 예정이다. 이를 두고 농민단체들은 "2006년은 그야말로 한국농업이 살아남느냐, 완전 몰락하느냐의 결정적 기로"라며 "350만 농민은 국민과 함께 한미 FTA 저지를 위해 한 치의 물러섬 없는 투쟁을 강력히 전개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7% 내외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쌀을 포함된 것으로, 우리의 주식인 쌀을 제외시킨다면 식량자급률은 5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미 우리의 식단을 외국 농산물이 완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리, 콩, 밀 등을 포함한 대부분 농산물은 우리의 들판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농민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우리의 전통농업인 쌀마저 들판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봄은 우리 곁에 와 있다. 들판에는 논갈이가 한창일 때다. 그런데도 우리의 들판은 긴 겨울보다도 더 썰렁해 보인다. 봄이 왔는데, "뒷산 너머 골짜기/엎드려 있는 논다랑이/일어날 줄 모르다"(박운식 '봄이 왔는데' 중에서) 논둑 밭둑가로 꽃들이 피어났는데도 논다랑이는 일어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얘야 여시골 논다랑이 묵히지 마라/니 어미하고 긴긴 해 허기를 참아가며/손바닥에 피가 나도록/괭이질해서 만든 논이다."(박운식 '아버지의 논' 중에서) 아버지의 말씀이 귓전에 쟁쟁한데. "아버지 이제 논농사를 지을 수 없어요" 울먹이는 농민 시인 박운식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묵어 나자빠진 논다랑이를 두고 울먹이는 국민이 어찌 농민 시인 박운식 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