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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란 예쁜 글자

김영희(시인)   
입력 : 2006-02-27  | 수정 : 200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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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춥고, 폭설로 얼룩진 지난 겨울이었다. 모처럼만에 서울 근교의 꽃 시장을 찾았다. 겨울이 다 갔다고는 하나 아직도 살갗에 닿는 바람결은 차다. 너무 성급한 건 아닐까 하는 내 마음과는 달리 집집의 비닐하우스 안은 눈부시게 환하다. 모진 추위를 견디고 나온 꽃들이 서로 '나 좀 보아 달라'는 듯이 서로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겨우내 웅크리고만 있던 내 마음이 환하게 밝아온다. 역시 꽃과 나무들, 자연에게서 얻는 감동이 가장 크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에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꽃대를 밀어 올리는 수많은 난들이며 철쭉이 아름드리로 피어있다. 봄이라는 빛깔은 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곳곳에서는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때에 따라 눈이 나고, 싹이 트고, 꽃을 피우고, 또 열매 맺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연의 법칙, 그 순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 거스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경외심을 갖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연(緣)으로 닿아 있다.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의 생명, 아무리 미물이라도 그저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햇빛과 바람과 물이라는 조건, 즉 연(緣)이 닿아야만 비로소 모든 것은 가능해진다. 세계의 대 문호(文豪) 헤르만 헤세도 정원을 가꾸는 일에서 끊임없는 기쁨을 발견했다고 한다. 꽃과 나무에서 오묘한 생명의 비밀을 발견하였으며, 결국 그것으로 인해 노벨문학상이라는 문학적 결실도 얻었다고 한다. 다음은 그가 한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음산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봄이 오면 모든 꽃으로부터 영원하고 즐거운 선물을 받게 된다.' '자연은 관대하면서도 용서가 없는 것.' 그렇다. 아무리 작은 곳, 어디에서든 어김없이 진행되고 있는 생명의 소리, 생명의 흐름에 새삼 숙연한 마음이 든다. 봄 하늘 아래, 어느 시인의 '봄'이라는 동시 한 편을 가만히 음미해 보는 3월이다. '봄'이란 예쁜 글자를 써놓고 바라 보세요 지금 막 부풀어 오른 꽃망울 같잖아요 손가락 꼭 눌러 보세요 말랑말랑 하잖아요 '봄'이란 환한 글자를 붙여놓고 바라 보세요 깃 고운 까치 한 마리 날아올 것 같잖아요 강물 빛, 하늘 한 자락 흘러들 것 같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