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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시골풍경

이정옥(위덕대 교수)   
입력 : 2005-12-01  | 수정 : 200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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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일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유럽 여행은 처음이었다. 첫 여행이라면 으레 가게 되는 정해진 코스의 여행사 상품으로 간 여행이 아니라서 독일의 유명관광지는 물론, 도시와 시골을 골고루 다녀볼 수 있었다. 가기 전 들은 사전지식, 독일 도시는 2차 세계대전으로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현재의 독일 모습은 거의 모두 복원된 것이라는 것. 내게 있어서 복원의 개념은 ‘문화재 등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회복하는 것’이기에 ‘아하! 그 많다던 중세의 성곽과 성당 등을 다시 재건축하였겠지. 그것도 오랜 시간 공들여 복원한다니 정교하고도 치밀하게는 하였겠구나. 대신 깡그리 파괴되었다던 살림집과 도시를 어찌 옛 모습 그대로 복구할 수 있어? 당연히 현대적인 시멘트 구조물, 나의 눈에 익숙한 미국적 혹은 서울식 메트로폴리탄, 게다가 독일인은 워낙 매사에 튼튼한 걸 좋아한다니 견고한 콘크리트의 멋없는 건축물들이 즐비하겠지.’ 난 나의 상식과 상상을 단단히 믿었다. 독일에 첫 발을 디딘 날, 프랑크푸르트의 첫 인상은 내 상식에 동조해 주었다. 유럽의 금융과 교통 중심으로 독일의 관문이라는 도시치곤 그다지 크지는 않은 듯하나, 제법 중심가에 있는 호텔에서는 하늘 높이 큰 건물들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도 높은 건물이 많은 좀 특별한 도시야…" 10여 년 이상을 독일에서 살다온 사촌 여동생이 한 말에 ‘대도시에 고층빌딩 당연하지, 특별하기는…' 이런 반응이었다. 그러나 독일에서의 10일은 이와 같은 나의 생각과 상식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나날들이었다. 우선 프랑크푸르트만 해도, 빌딩 밀집지역을 제외하고는 중세적인 시청사, 의회가 있는 광장 중심의 도시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만에 타임머신을 타고 마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한 듯 착각이 들 정도로 구 시가의 완벽한 복원은 놀라웠다. 그런 시가지의 풍경은 아름다운 성이 있고,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대학이 있는 하이델베르크, 세계 최대의 천장프레스코가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도시, 인구 13만이지만 대주교가 있는 뷔르츠부르크, 1000년 전의 성채인 카이저부르크가 있는 인구 50만의 도시 뉘른베르크, 인구 1만3천밖에 안되나 천년이 넘는 도시 역사를 자랑하는 중세의 성채로 둘러싸인 로텐부르크, 2000년의 역사도시 레겐스부르크 등 인구 규모가 50만이 넘는 도시든, 2만도 채 안 되는 시골이든 간에 별 차이가 없었다. 여행객에게 이국의 풍경이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그보다 더 부러운 건 도시와 시골의 간극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이들 대부분의 도시들이 2차대전으로 40% 이상이 파괴되었으나 거의 완전한 복구에 의해 또 다른 역사의 켜를 덧쓰고 있다는 것을 붉은 지붕 위의 푸른 이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도시와 시골, 대도시와 소도시의 풍경을 떠올렸다. 도시로, 도시로 몰려온 인구를 감당하느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대단지 아파트들로 숲을 이룬 도시의 살풍경, 도시로 몰려간 사람들이 벗어놓은 허물 마냥 바스라져 가는 함석 지붕집들의 남루함으로 남은 시골에마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높기 만한 아파트가 들어선 생경한 풍경. 고만고만한 산들이 하늘과 맞닿아 이룬 스카이라인이 아름다운 우리의 산골에, 우뚝 솟아 참으로 꼴불견의 아파트들은 얼마나 우리네 금수강산의 풍경을 망치고 있는가. 아, 삭막한 살풍경의 대도시, 아니면 몰개성의 시골을 구분함 없이, 전국 어딜 가나 살기 좋고 아름답고 가장 한국적인 살림집으로 이룬 우리나라를 가꿀 수 없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