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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왔소'축제, 우리의 사천왕사는?

이정옥 교수   
입력 : 2005-10-13  | 수정 : 200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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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를 무대로 한 고대 동아시아의 국제교류를 재현하는 축제 '사천왕사(四天王寺) 왔소'가 11월 6일 오사카시 나니와노미야 유적공원에서 열린다는 뉴스를 읽었다. 1990년부터 시작되어 15년이나 된 이 축제는 왕인 박사를 비롯해 일본에 문물을 전한 이른바 '도래인'들의 행차를 재현한 가장행렬이다. 1600년 전 한자와 도자기, 기와, 직조술 등 당대 최고의 선진문물을 일본에 전한 것을 기념한 축제다. 축제명인 '사천왕사 왔소'의 '왔소'는 우리말 '왔소'에서 따왔다 한다. 몇 년 전에는 이 축제의 행렬이 우리나라에까지 온 적도 있음을 기억한다. 이 뉴스를 보면서 경주 낭산 기슭에 무성히 자란 들풀로 뒤덮인 황량한 사천왕사지가 오버랩 되면서 느끼는 이 착잡함을 어찌 하랴? 우리의 사천왕사는 그 사찰 유래만으로도 가히 마술 같은 기적을 이룬 절이다. 삼국유사 기이편 '문호왕법민'조에 사천왕사 연기설화가 기록돼있다. 당군 침입의 급보를 접한 문무왕은 명랑법사에게 계책을 논의했다. 명랑법사는 낭산 남쪽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세우고 도량(道場)을 열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절을 완성시킬 여유가 없자 그는 비단을 둘러 임시 절을 만들고 풀로써 오방신상을 만들어, 12명의 유가명승과 함께 문두루비법(밀교비법)을 쓴다. 이 소문을 들은 많은 신라인들도 몰려와 함께 기도에 동참하였으니 문자 그대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이루어진다. 그들의 정성은 신이한 기적을 낳았다. 교전하기도 전에 풍랑이 일어나 당나라 배는 모두 침몰하였다. 그 뒤 5년 만에 절을 완성, 사천왕사라 하였다. 사천왕사는 우리나라 진호국가불사의 성지요, 밀교의 최고성지인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사천왕사는 신라 선덕여왕의 지혜로운 예언 속에서 이미 창건이 점지된 절이었다. 신라 최고의 음유시인 월명사가 제를 올렸고, 달밤에 피리를 불면 하늘의 달도 감응, 멈추었다던 환상 같은 절이기도 하다. 예전 신들이 내려와 놀던 신성한 숲 신유림, 낭산에는 선덕여왕릉도 있다. 예언과 기적과 환상의 절, 사천왕사가 지금 어떠한가? 절터는 일제에 의해 철길로 동강나 있고, 목 잘린 두 개의 귀부는 습한 미나리꽝에 처박혀 숨도 못 쉰다. 절터에 갈 때마다 저리고 미어지는 가슴 아픔, 치미는 분노,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진저리를 친다. 어떤가? 이제 사천왕사를 이대로 버려 두지는 말자. 예전 이 절이 만들어진 마술 같은 기적을 재현하는 성숙한 축제를 기획해 봄직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저 일본의 '사천왕사 왔소'축제행렬을 청하고 중국도 불러 진정한 동아시아 국제교류 축제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꿈은 이루어진다던데, 이 바람이 마술 같은 꿈이기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