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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저 하늘처럼…

김영희(시인)   
입력 : 2005-08-29  | 수정 : 200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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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전화를 받았다. 좀 만나자는 것이었다. 칠십이 넘은 이 분과의 인연은 20년도 더 되었다. 몇 년 새 자주 이런 저런 집안 이야기를 소상히 들어 왔던 터라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알게 되었다. 초췌한 모습의 그는 미리 쓴 유언장이라며 꺼내 놓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사후에 모든 재산을 불우한 이웃이나 종교단체에 기부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히려 잘한 결정이라고 말해 주었다. 처녀시절부터 40년도 넘게 미장원을 하며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야말로 근검절약의 정신은 곁에서 지켜보기가 딱할 정도다. 지금도 비교적 깨끗이 사용했던 휴지는 버리지 않고 다시 한 번 사용한다. 도심 한 가운데 살면서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연탄을 땠다. 파마 약에 지문이 닳아진 손, 거기다 이런저런 병으로 현재의 건강상태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종합병동이다. 그러나 2년 전 남편이 갑자기 돌아간 후부터 서서히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바르게 키웠다며, 효자아들 두었다고 자랑이 대단하더니 형제들 간에 재산상의 보이지 않는 알력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얼마간은 삼형제가 서로 어머니를 위하는 척, 모시겠다고 나서더니 찾아오기는커녕 지금은 전화조차 하지 않는다. 이제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무색할 정도다. 여러 번 이런 저런 문제에 부딪치다 보니 이제 더는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잃은 것이다. 지금 그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누구보다 따뜻한 가족관계의 회복일 것이다. 가령 재산을 물려준다고 해도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했노라고 했다. 욕심과 탐욕에 젖어있는 사람은 늘 지나친 이익만을 추구한다. 그럼으로써 그에 따른 괴로움도 많아진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른다. 요즘처럼 더없이 맑고 높푸른 하늘을 쳐다보니 법구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질지라도 사람의 욕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 갖가지 고통만을 수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