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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열매

김영희(시인)   
입력 : 2005-07-13  | 수정 : 200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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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기사의 한 내용이다. 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지낸 그는 지금 필리핀의 오지인 어느 섬에서 원주민들에게 농사짓는 기술을 전파하고 영농법을 가르치며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30만의 이곳 원주민들은 바나나와 소금으로 연명하고 있는데 이런 원시적인 생활로 평균수명은 마흔을 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축산, 묘목생산, 종묘사업을 통해 영농기술을 가르치고 더 나아가서는 학교, 의료기관 등을 설립하는 '10년 봉사계획'을 세워 활동 중이라고 한다. 물론 그가 농사에 대해 알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책을 열심히 봐가며 영농법을 익히고 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정체성, 삶의 가치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일반 사람들보다 그야말로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퇴직 후 심리적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이런 현상은 권세가 사라진 뒤 닥쳐오는 일종의 허탈감일 것이다.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조예가 깊은 어느 학자는 운명, 즉 팔자를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덕을 쌓는 일(적선)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그 고정된 인식의 틀을 깨부수는 것에는 적선이라는 쇠망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서 누구나 다 적선(공덕)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다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겉으로 형식과 모양만 드러내는 가짜가 아닌, 진짜 공덕을 쌓기 위해서는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말만 내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진짜 선이고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은 가짜 선에 불과하다. "현직에서 물러나니 허무함이 밀려옵디다. 나라를 위한다며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은 자식과 가족을 더 생각하며 살아온 삶이 헛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그가 가장 낮은 자세로 여생을 봉사활동으로 마무리하려는 그의 헌신,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보는 것 같아 새삼 숙연해지며 고귀한 느낌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