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죽음에 대하여

김동환(시인)   
입력 : 2005-06-10  | 수정 : 2005-06-10
+ -
우리나라가 아직도 결식아동이 있다고는 하나 굶주림에서 벗어난 지 꽤나 되었다. 사십대라면 모를까 삼십대만 해도 보릿고개를 겪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삼사월 긴긴 해에 점심을 굶겠느냐, 목매기를 지붕위로 올리겠느냐,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겠느냐'라는 옛말이 있었다 한다. 점점 어려운 일이니 결국은 점심을 굶는 것이 그나마 쉬운 일이라는 것이고, 어차피 끼닛거리가 없는 보릿고개에 그나마 자위라도 하려고 나온 말일 것이다. 올 봄 마흔 겨우 넘은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친족의 장례식에 문상을 간 적이 있었다. 슬프고 안타까웠다. 인간에게 가치기준의 정점에 있는 것이 생명이다. 영어 life라는 단어가 생명과 또한 삶이라는 뜻이 있는 것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은 죽음을 초월하는 정신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죽음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간과하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지나온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며 살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람은 매사에 너그러우면서도 적극적일 수가 있고 또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젊은 날 Jeremy Taylor의 '죽음에 대하여'라는 수필을 읽고 충격이 컸었다. '가을은 풍성한 음식으로 우리에게 질병을 주고, 겨울은 추위로 질병을 악화시키며, 봄은 우리들 영구차에 뿌릴 꽃을 제공해 주고, 여름은 우리의 무덤을 장식할 잔디와 덤불을 제공해 준다.' 시작하는 첫 문장이었다. 이제는 '가을은 풍성한 음식으로 우리에게 충분한 영양을 주고, 겨울은 추위로 우리의 인내심을 키워주며, 봄은 솟아나는 새싹과 피어나는 꽃으로 우리에게 기쁨과 활력을 주고, 여름은 무성한 덤불과 나무로 우리에게 풍부한 산소를 공급해준다'라고 읽고도 싶다. 문상을 다녀와서 쓴 '옛날이야기'라는 제목의 졸시를 여기에 옮긴다. '바람이 사랑하는 만큼/꽃잎 지는 봄날/갓마흔에 약을 먹은/친족의 장례식장/사람 아닌 돈이 그를 너무 사랑했나보다/곡소리 뒤로하고 찾아간/병원 구내 조그만 공원에서/귀동냥한 노인들의 옛날이야기/삼사월 긴긴해에 점심을 굶겠느냐/목매기를 지붕위로 올리겠느냐/홀로된 시아버지를 모시겠느냐.'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노인들의 이야기는 이제 정말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