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열다섯 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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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만남을 피해버린 두 사람

인연없는 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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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담불라 동굴 사원의 벽화(사진 김용섭)

 

아침 탁발 길은 부처님이 세상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그날도 아난 존자와 함께 걸식하러 사위성에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성 입구 한쪽 귀퉁이에 추레한 모습의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너무나 딱한 처지인지라 인정 많은 아난 존자는 부처님에게 말했습니다.

 

저 할머니가 너무 안쓰럽습니다. 부처님, 저 할머니에게 가셔서 행복해지는 말씀 한 마디 들려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부처님은 할머니를 바라보다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인연이 없구나.”

 

아난 존자는 계속 청했습니다.

 

그저 다가가시기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저 할머니는 부처님의 모습에서 뿜어나오는 밝고 따뜻한 기운에 마음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부처님을 향해 기쁜 마음을 일으키면 그게 부처님과 인연을 시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자의 간곡한 청에 부처님은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부처님이 다가가자 할머니가 고개를 외로 돌렸습니다. 부처님은 할머니가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무심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굳이 부처님을 피하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 건 아닙니다. 그저 부처님을 마주 보지 않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할머니의 주변을 천천히 돌면서 마주 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면서 피했습니다. 조금 더 다가가서 얼굴을 마주 대하려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았고, 할머니의 시선이 향한 그 높은 곳으로 부처님이 몸을 날아 올리자 이번에는 머리를 숙였지요.

 

부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시선이 땅으로 향하자 신통력을 썼습니다. 땅 밑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몸을 들어 올렸는데, , 이런! 할머니는 두 손으로 제 눈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고 부처님은 할머니와 마주 대할 수 없습니다.

 

보아라, 아난아, 이제 내가 이 사람과 인연을 만들려면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대지도론)

 

살아가면서 집안이 부유한 것은 사실 큰 복입니다. 넉넉하면 마음이 옹색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이에게도 베풀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아침 탁발 길에 성문 입구에서 만난 할머니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건 둘째 치고 아난존자의 눈에 참으로 박복해 보인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부처님에게 제발 저 사람 마음에 행복과 기쁨을 심어주십사 요청했을까요.

 

그런데 부처님의 대답은 너무나 냉랭합니다.

 

저 사람과 나와는 인연이 없다는 것이지요. 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훌륭한 제자도 찾아내지 못하는 부처님과의 인연(佛緣), 전생들을 속속들이 뒤져서라도 찾아내서 어떻게 해서라도 부처님과 진리와 인연을 맺어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할머니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니 정말 드물기 짝이 없는 경우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사람일수록 어떻게 해서라도 부처님이 다가가서 인연을 맺고 가르침을 전해줘야 옳지 않느냐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이 할머니의 경우, 부처님이 아무리 다가가도 스스로가 고개를 들고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귀찮으니 저리 가라고 밀치거나 왜 성가시게 구느냐고 얼굴을 마주 대하고 따지기라도 하면 그것이 어떤 실마리가 되어 인연은 시작될 터인데, 그런 행동조차 귀찮아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과 맺어질 인연을 피해버린 사람 이야기는 또 있지요.

 

80세 노인이 있습니다. 앞의 할머니와는 정반대로 이 할아버지는 아주 큰 부자입니다. 평생을 쓰고도 다 못 쓸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데, 인색하기는 또 이를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러 살던 집을 개조할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왕이면 어마어마한 대저택을 만들고자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그날도 부처님은 아침 탁발 길에 나섰다가 이 사람의 수명이 오늘로 끝날 것임을 알았습니다. 부처님은 그 대저택 공사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 삶의 시간이라면 죽기 전에 인생이란 무엇이고,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지 이런 이야기 한 자락은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부처님이 그 집 앞에 이르러 할아버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인부들을 감시하고 부리느라 여념이 없었지요. 간신히 할아버지를 불러서 마주 대한 부처님이 말했습니다.

 

무얼 하느라 그리 바쁘십니까? 집 공사가 아주 큽니다.”

 

대대적인 증축 공사를 감탄한다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대답했습니다.

 

앞 사랑채에는 손님을 대접하고 뒤채 별당에는 내가 살고 자식들이며 하인들도 방 하나씩 주어야 하고.”

 

할아버지의 자랑이 끝나자 부처님은 간곡한 심정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생사에 관해서 아주 중요한 게송 한 편 들려드리고 싶은데 잠깐 일을 멈추고 들어 보지 않겠습니까?”

 

할아버지는 내키지 않았지만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게송이라니 한 번 들어 보십시다.”

 

부처님은 말했습니다.

 

자식이 있고 재물이 있어서 /괜히 쫓기며 사네./이 내 몸도 내 뜻대로 될 수 없는데/자식과 재물을 무엇 때문에 걱정하리.

 

더울 때는 여기서 머물고/추울 때는 저기서 머물겠다고/미리 대비한다지만/정작 자기에게 닥칠 변고는 알지 못하네.

 

이러면서도 사람들은/자기가 현명하다 하지만/이러면서도 자신이 가장 현명하다 여기면/그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네.”

 

증축 현장에서 부처님의 게송이 울려 퍼졌고, 할아버지는 건성으로 듣는 척하다가 말했습니다.

 

아주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바빠서 나중에 이야기 나누기로 하지요.”

 

부처님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집을 빠져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수 서까래를 올리던 할아버지는 그게 떨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법구비유경)

 

가난한 사람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어서 삶을 그냥 흘려보내고 부유한 사람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삶을 지나쳐 버립니다. 부처님이 코앞까지 왔음에도 귀찮은 듯 돌려보내고, 굳이 내 말 좀 들어보라며 다가섰는데도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오라고 밀어냅니다. 꼭 부처님하고만 인연을 맺어야 잘 사는 삶이냐고 따져 물으시겠습니까? 살다가 어느 한 순간이라도 이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인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추구하며 지내왔는가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과 인연을 맺는 일입니다. 무엇을 하며 바삐 살아가나요? 잠시 멈춰 보시지요. 부처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