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열한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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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정반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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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드르 부조에서. 왼쪽에 말을 탄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이 보인다. 말발굽 아래에 손을 내고 있는 신들의 모습.(사진 김용섭)

 

아버지와 아들이 만난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고 특별할 일도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 살았다가 만났다면 축하할 일이요, 이제부터라도 자주 얼굴 보고 연락하며 잘 지내시라고 덕담을 보내면 될 일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 아버지인

 정반왕을 만난 경우는 조금 특이합니다. 왕의 아들이 의도적으로 석가족이라는 족보에서 스스로를 떼어냈기 때문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여전히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에서 석가모니라고 부르지만, 부처님은 스스로를 석가모니라 부르지 않고 여래라고 스스로를 가리킵니다. 이 말은 자신은 이제 석가족 사람이 아니라 붓다 가문 출신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29살이 되도록 왕궁 떠날 기회를 노렸습니다. 아버지 정반왕이 아낌없이 제공해주는 안락하고 호화롭고 쾌락에 젖은 왕자의 삶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행여 아들이 왕궁을 떠나 구도자가 될까 두려워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의 인생에 깊숙하게 관여했습니다. 만나는 사람을 제한하고 외출을 통제하였지요. 꽃길만 걷게 해주려는 부모의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그 아들은 아버지가 제공하는 온갖 쾌락과 환락 이면에 숨어 있는 괴로움과 슬픔까지 꿰뚫어 보았습니다. 어쩌면 자식의 이런 어긋남은 지극히 정상이고 상식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부모의 품 안에서 부모가 잡아다주는 물고기만 먹으며 지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싯다르타 태자가 아노마 강가에서 말을 내렸을 때 그는 더 이상 왕족도 아니게 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세속의 평범한 남자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을 향한 열렬한 믿음으로 쓰인 붓다 일대기에는 싯다르타 태자의 출성(出城)은 하늘의 신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신의 입장은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저 왕자가 하루라도 빨리 욕망의 궁궐에서 벗어나 보리수 아래로 나아가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깨달음을 이룬 붓다에게 가르침을 들어서 우리 수행을 진척시킬 수 있을 테니까.’

 

말발굽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신들이 말발굽 아래 자신들의 손바닥을 대었고, 궁 안의 사람들과 궁 밖의 평민들 아무도 깨어나지 못하도록 하늘에서 무엇인가를 뿌려댔다고 하지요. 최선을 다해서 아들의 출가를 막았지만 하늘은 아버지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싯다르타는 그렇게 살려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정반왕의 아들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자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내면서 삶과 죽음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비밀을 보고 그 이치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려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싯다르타는 더 이상은 아버지 정반왕의 아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반왕의 부성애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아들의 그 후 행적을 따라가게 하였고,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았습니다. 급기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아들은 성자 중의 성자, 성자 보다 뛰어난 존재가 된 것입니다.

 

~ 이젠 됐다. 어쨌거나 고집을 피워 성을 나가 자기가 품은 목표는 이루었다는 말 아닌가. 그러면 이제 집으로 돌아올 일만 남았구나.’

 

아버지 마음은 딱 그랬습니다.

 

아들아! 돌아오라!”

 

아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보낸 사신들은 하나같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을 받고 왕의 아들, 아니 이제는 신과 인간의 스승인 붓다를 만나서는 그의 제자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부처님의 귀향이 이뤄졌습니다. 경전에서는 돌아오는 내내 아버지가 궁에서 음식을 날라주었다는 대목도 있고, 정작 카필라국에 도착해서는 궁으로 곧장 걸음하지 않고 모든 붓다의 방식을 따라 거리에서 탁발도 하며 천천히 나아갔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아버지 마음에는 그저 아들뿐이었습니다. 가족과 친지들 눈에도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정신적 스승 붓다보다는 예전의 왕자였던 싯다르타가 눈에 들어올 뿐이었지요. 부처님은 그들의 마음에서 그 질긴 애정과 애착을 끊어내게 뭔가 해야 했습니다.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은 엄청난 기적을 보였다고 합니다. 혈연으로 얽힌 모든 사람들이 경악할 만한 신통변화를 보였고 그 결과 사람들은, 귀향한 저 사람이 더 이상 예전의 왕자가 아니요, 인류의 스승으로 살아갈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지요.

 

아버지 정반왕은 이제 부처님에게 합장하고 절을 올립니다. 아들이 아닌 정신적인 스승으로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부모자식 관계는 죽어서도 바뀌지 않습니다. 내 몸을 낳고 길러주신 그 은애의 정은 함부로 끊어서도 안 됩니다. 다만, 자식은 자식의 삶이 있으니, 그걸 인지하고 존중해주는 것,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점 아닐까요? 부처님을 만난 정반왕은 성자의 첫 번째 단계로 들었습니다.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