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열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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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와 혀-30명의 귀족 청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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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 부조 가운데 인과응보경의 내용. 술에 취해서 춤추고 치근거리는 사람들의 부조. 속세 사람들의 유흥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사진:김용섭)

 

깨달음을 이룬 직후 젊은 붓다가 우루벨라를 향해 길을 걷다가 길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그 숲에는 귀족 청년들이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모두가 부인을 동반하고서 맛있는 음식과 질펀한 농담, 그리고 거침없는 쾌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아내가 아닌 기녀와 함께 자리했는데 어느 순간 그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웃고 떠들며 노느라 여념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순간 저들은 아찔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 좀 봐! 여기 풀어 놓았던 보석들이 하나도 없다!”

 

무조건 그 여자를 찾아야 한다. 다들 흩어져서 샅샅이 숲을 뒤져!”

 

서른 명의 귀족 청년들과 그 아내들이 숲을 헤집고 다니느라 조용하던 숲이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그들은 보물을 훔쳐간 여인을 찾느라 뛰어다니다 어느 나무 아래에 두 발을 맺고 앉은 젊은 붓다를 발견했지요.

 

저 사람은 분명 그 여자를 봤을 거다.’

 

그들은 다가갔습니다. 그늘에 앉아 있는 품새는 누가 봐도 수행자였고,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먼저 공손히 합장을 하고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보물을 훔쳐간 여자의 행방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존자시여, 혹시 어떤 여자 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까?”

 

어쩌면 붓다도 조금 전까지 저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기에 이들의 이 황망하고 다급한 질문의 사연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묻습니다.

 

귀한 가문의 청년들이시군요. 대체 그 여자를 왜 찾고 있습니까?”

 

귀족 청년들은 붓다에게 사정을 자세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얼마나 그 여자의 행방을 알고 싶었을까요? 그 여자가 들고 달아난 보석꾸러미의 값어치를 생각해보면 지금 한가하게 일의 전말을 낯선 젊은 수행자에게 들려줄 시간이 없겠지만, 그들은 너도나도 너무나 절박한 나머지 소리 높여 하소연했습니다.

 

“(이러저러해서) 우리는 보물을 모조리 도둑맞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젊은 붓다가 덤덤한 얼굴빛으로 되묻습니다.

 

내가 묻겠습니다. 지금 그대들에게는 여자를 찾는 일이 더 시급합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더 시급합니까?”

 

붓다의 이 물음에 그 귀족청년들이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그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대답합니다.

 

존자시여, 저희는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더 시급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앉으십시오. 내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청년들은 붓다의 이 한마디에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서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지요. 붓다는 보시에서 시작하여 욕망의 위험을 일러주는 이야기, 나아가 고집멸도의 가르침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이 법문을 듣고 성자의 흐름에 들어갔으며 가르침에 귀의하여 출가자가 되었습니다.(<마하왁가(Mahā vagga, 大品)>)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잃어버린 보석꾸러미들은 얼마나 값비싼 것들일까요? 이 청년들을 왕자라고 하는 경도 있으니 이들이 잃어버린 재물은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게다가 그 보석을 들고 달아난 여인은 신분도 천하여 어디를 가서 찾아야 할지 난감합니다.

 

혈안이 됐다-이 한 마디로 귀족청년들의 현 상황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에 시뻘겋게 핏발이 설 정도로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재물을 되찾으려 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지경까지 이르면 바깥의 어떤 것과 통하게 되고, 그것이 매우 절묘한 인연으로 작동해서 그는 변하게 됩니다. “궁즉통 통즉변(窮卽通 通卽變)”이라는 <주역>의 말이 떠오릅니다. 붓다의 말 한 마디에 저들은 지금 이 순간 진정 자신들이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변한 것이지요.

 

<법구경>에서는 슬기로운 이가 지혜로운 이와 함께 하면 금방 깨달으니 마치 혀가 국 맛을 아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슬기로운 이는 지혜의 가르침이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국자는 아무리 맛난 국을 퍼도 그 맛을 모르지만 혀는 압니다. 진리의 가르침 한 마디가 절실한 그 순간이 이 청년들에게 찾아온 것이지요. 그러니 혀가 국 맛을 아는 것처럼 붓다의 평범하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이 가르침에 눈을 뜬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은 바로 자신들의 재물을 들고 달아난 여인을 찾아 헤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만큼 혈안이 되어서 찾아다니고 좇고 구하며 다녔으면 이제 됐습니다. 더 늦기 전에 사방팔방 헤매고 다닌 자신을 추슬러야 합니다. 이제는 국자가 아닌 혀가 되어 진리의 국을 제대로 맛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