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아홉 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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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왕비의 출가-케마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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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시리기야 벽화 미인도. 꽃을 든 미인들의 모습이 마치 케마 왕비를 보는 듯 하다.<사진:김용섭>

 

인도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에게 케마라는 이름의 왕비가 있었습니다. 케마 왕비는 그 나라 최고의 미인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왕비의 미모를 칭송하는 소리가 늘 흘러나왔고, 어느 사이 그녀는 자기 미모에 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왕비가 유독 만나기 꺼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부처님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탄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타깝게도 부처님은 여느 사람들처럼 왕비의 미모를 찬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들으란 듯이 겉모습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속절없는 것인가 하는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늘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마음공부를 한 왕은 왕비도 그리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자신의 미모를 인정해주지 않는 부처님에게 나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왕은 배우들에게 명하여 부처님이 머물고 계신 벨루 숲을 찬탄하는 노래를 지어서 부르게 했습니다.

 

배우들의 노래를 듣자 케마 왕비는 그 숲으로 한 번 가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러나 벨루 숲에 가기는 했지만 부처님 계신 곳으로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가봤자 부처님은 겉모습이란 것이 참으로 허망하다. 그러니 한때의 아름다움에 취해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를 놓치지 말라라는 말씀만 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신하들은 왕의 명령이 있었던 터라 싫다는 왕비를 억지로 부처님 앞에까지 이끌었습니다.

 

부처님은 왕비가 오고 있는 것을 보고 깊은 선정에 들어서 더 아름답고 젊은 여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여인은 종려나무 잎사귀로 만든 부채를 부처님에게 부치며 공손하게 서 있었지요.

 

케마 왕비는 이 젊은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나라에서 자신보다 더 예쁜 여인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은 더 아름답고 설상가상으로 한결 젊었습니다.

 

뭐야? 부처님은 젊음과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않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정작 당신 곁에 저토록 매력 넘치는 젊은 여자를 두고 계셨네?’

 

그 여인이 부처님이 변화해서 만들어 낸 환상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에 취하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도중 그 여인이 서서히 허물어져 갔습니다. 탱탱하고 윤기 흐르던 피부가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습니다. 새카맣던 머리카락에 드문드문 흰 머리카락이 자리하고, 새빨간 입술의 빛깔도 별빛 같던 눈망울도 생기를 잃어갔습니다. 날렵하던 몸매가 둥글둥글해지더니 허리 주변이 두툼해져 갔습니다.

 

싱싱하던 젊은 여인은 어느 사이 중년 여인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중년의 모습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찰나 찰나 허물어져 갔지요. 등이 굽어지고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면서 주름이 패였습니다. 머리카락은 온통 백발인 데다 윤기를 잃어 부스스했고 이가 죄다 빠져버렸으며 꼿꼿하게 서 있던 힘이 사라졌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두 눈에는 눈곱이 끼었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사람들의 인기척에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그 여인은 숨져 갔습니다. 그 소멸은 바짝 마른 종려나무 잎사귀가 말라서 부서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노쇠한 여인의 시신에서 그 누가 젊은 시절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케마 왕비는 눈앞에서 벌어진 이 광경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싱싱한 몸이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지는가! 내 몸도, 이 피부도 저렇게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나도 저 길을 가야 하는 것인가!’

 

부처님은 케마 왕비에게 이런 깨달음이 다가온 것을 놓치지 않고 이렇게 시를 읊었습니다.

 

거미가 스스로 만들어 낸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탐욕에 물든 자들은 스스로 만든 번뇌와 괴로움에 사로잡힌다. 헛된 바람을 떠나 괴로움을 버린 현명한 사람은, 그물을 끊고 앞으로 나아간다.”

 

제 마음에 쏙 드는 것에 집착하고 열망하고 그에 취해서 지내다가 그것이 내 마음에 더 이상 흡족해지지 않거나 내 뜻을 따라주지 않으면 거센 불만과 강한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부처님은 케마 왕비에게 헛된 욕망에 이끌려 세상 평판에 취하지 말고 더 나은 가치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라고 조언하셨지요.

 

왕비의 마음에 거센 회오리바람이 일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그토록 취하게 만든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아차렸습니다. 케마 왕비는 그 길로 출가하였습니다. 사실 그동안 굳이 부처님을 피해 왔던 것도 자신의 미모가 참으로 위태로운 것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부러워하였고 그것이 하나의 권력으로 여겨져 맘껏 도취했습니다. 하지만 그 권력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눈앞에서 허물어져 간 여인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케마 왕비는 자신의 이런 부질없는 교만을 제대로 짚어줄 눈 밝은 스승을 대면하려니 겁이 났던 것입니다.

 

왕비에서 비구니가 된 케마는 이후 부처님으로부터 지혜 제일이라는 칭송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비구니가 되었다 해서 그 아름다움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케마 비구니가 조용한 숲에서 한낮의 선정에 잠겨 있는데 그 미모를 보고 반한 악마 빠삐만이 찾아왔지요.

 

그는 넌지시 이렇게 제안합니다.

 

이토록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어찌 이렇게 인생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나 또한 청춘이니 우리 함께 인생을 즐기지 않겠습니까?”

 

수행을 방해할 심산으로 찾아온 악마 빠삐만인 만큼 늠름하고 멋진 청년의 모습을 띠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더 이상 겉모습에 흔들리는 케마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화려한 겉모습에 들어 있는 소멸의 실상을 일깨워주며 나를 유혹하려는 그대가 악마 빠삐만인 줄 알고 있다고 대꾸합니다. 당당하고 단호한 대꾸에 악마 빠삐만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신을 취하게 만드는 것의 실체를 알아차려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지혜이겠지요. 케마는 이렇게 미모 제일 왕비에서 지혜 제일의 비구니로 살다 갔습니다.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