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여덟 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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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가 만난 병자-사문유관에서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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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드르의 사문유관 장면, 가운데 수레를 탄 싯다르타 태자 앞에병들어 야윈 사람이 몸을 구부린 채 앉아 있다.<사진:김용섭>

 

건장한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서 있습니다. 그 중간에 화려한 수레가 있고 수레 위에는 싯다르타 태자가 앉아 있습니다. 바로 뒤에는 시종이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려고 일산을 들고 서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서면 남쪽 부조에 새겨져 있는 사문유관의 한 장면입니다.

 

튼튼하고 키 크고 다부진 몸매의 병사들이 부조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운데 자세히 부조를 들여다보면 왼쪽 끝에 누군가가 앉아 있습니다. 몸이 뒤틀려 있고 야위어서 볼품이 없어 보입니다. 표정은 정확히 읽히지 않지만 그 자세가 태자를 경배하는 것 같지 않고 또 편안해보이지도 않습니다. 건장한 병사들에 비해 그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성의 남쪽 문으로 유람을 나갔을 때 마주친 의 실체입니다.

 

초기경전인 <디가 니까야>(14. 대전기경)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공원으로 나가던 도중에 어떤 병든 사람을 보았다. 그는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렸으며, 자기 대소변에 범벅이 되어 그냥 드러누워 있었고, 다른 사람이 일으켜 세워주고 또 앉혀 주었다.”

 

부처님 일대기를 조금 더 드라마틱하게 기술하고 있는 <불설보요경>에서는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보살은 수레를 타고 남쪽 성문으로 나아가다가 또 길의 중간에서 병든 사람을 만났다. 배에는 복수가 차서 부풀어 올랐지만 온몸은 야위었고, 길가에 쓰러진 채 숨이 가빠서 입을 벌려 밭은 숨을 쉬고 있었다. 머지않아 목숨이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화려한 궁궐 안에서 세상의 온갖 즐거움을 누리며 지내던 싯다르타 태자(보살)는 이 낯선 장면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마부에게 그 사연을 묻습니다. 보살인 태자가 모를 리 없지만 새삼 마부와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대의 몸도 머지않아 이와 같으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태자의 질문에 마부가 대답합니다.

 

이 사람은 병든 사람이라 합니다. 죽을 때가 다 되었고 온 뼈마디가 쪼개지려 하며 남아 있는 목숨은 머리카락처럼 가늡니다.”

 

태자는 이 말을 듣고 깊이 탄식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덧없기 짝이 없다. 이 몸이 있으면 그걸 유지하려니 이 또한 괴롭고 힘든 일이다. 태어나면 이런 일들이 있게 마련인데 어떻게 이런 현상들을 면할 수 있을까? 내 몸도 그러할 것이다. 이 내 몸도 병이 들어 저 사람과 같은 모습을 취할 것이니 어찌 애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몸이 있으면 저와 같은 괴로움이 있고, 이 몸이 있는 한 즐거움은 없으리라.’(<불설보요경 출관품(出觀品)>)

 

태자가 세상을 다니며 둘러볼 때 세상에는 늙음과 병듦만이 가득 차 있고, 그에 따른 괴로움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사람들만이 있었습니다. 이게 현실이고 실존입니다.

 

우리는 모두 병자라는 것이지요. 설령 지금 병 없이 건강하다고 해도 육신은 부서지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니, 육신을 지닌 자로서 병들지 않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일생에서 겪는 생로병사 가운데 은 그나마 사정이 좀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몸 관리를 잘하고 평생 몸에 해로운 음식을 멀리하며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한다면 죽을 때까지 병 안 걸리고 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여기에는 부모로부터 받은 건강한 유전자도 한몫해야 합니다.

 

자신이 건강관리를 잘 하고 있기에 앓아누운 사람에게 어쩌자고 그런 병에 걸려?”라면서 병든 사람을 탓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죽을 때까지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질병의 종류에는 약 3만 가지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몸이 언제 무너지느냐, 어떻게 무너지느냐의 차이가 사람마다 있을 뿐, 결국 사람이건 동물이건 육신이 병들고 쇠약해지다 끝내 죽음에 이르는 길은 정해진 숙명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태자 시절 사문유관으로 만난 병듦을 깨달음으로 해결하셨을까요? 안타깝지만 깨달았다고 해서 병 안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도 이런저런 육신의 병고에 시달렸지요.

 

그러면 굳이 병을 피할 수 없다는 일을 불교에서는 왜 이리 심각하게 언급할까요? 유마경에 보면 그 답이 있습니다. 지혜롭고 부유하고 명성이 높고 신사적이고 사업수완에도 뛰어나고 가정도 잘 꾸려서 살고 있는 유마거사마저도 병에 걸린 것입니다. 사람들이 병문안을 하러 모여드는데 어쩌면 호기심 때문에 유마거사를 찾아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도 병에 걸리나?”하는 호기심인 것이지요.

 

경전에서는 유마거사의 병은 실제의 병이 아니라 방편의 병, 쉽게 말하면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기 위한 꾀병이라고 말합니다. 병문안하러 온 사람들에게 유마거사는 당부합니다. 이 몸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요. 아무리 잘 관리한다고 해도 부서지고 무너지게 마련인 것이라고요. 그렇다고 이 몸을 내버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유마거사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병들지 않고 늙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의 몸, 지혜의 몸이니 부처님의 몸입니다.”<방편품>

 

아무리 몸을 잘 관리해도 병들게 마련이니, 덧없는 몸과 목숨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뜻깊은 일을 지금 당장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부처의 지혜를 추구하자는 것이지요.

 

남쪽 문에서 병들어 고통 받는 사람을 만나고서 싯다르타는 세상 모든 것의 무상을 절감합니다. 하지만 끝끝내 붓다가 되셨으니 덧없는 육신으로 가장 보람 찬 일을 이루어내셨습니다. 머리카락처럼 가는, 그마저도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몸과 목숨을 지닌 우리가 지금 무엇을 급선무로 삼아야 할지 자명해지지 않나요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