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여섯 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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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붓다를 놓친 사람-우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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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수도승 가운데 가장 앞의 인물이 우파카. 석가모니부처님에게 당신의 스승이 누구인가를 묻는 장면이다.(사진 김용섭)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산다는 것이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이별의 연속이라 해도 좋습니다.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누군가를 언제 만나느냐 일 것입니다. 

 

역사에서 첫 번째를 차지하는 인물은 주목받습니다. 불교역사에서도 똑같습니다. 누가 가장 먼저 부처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을까 하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흥미를 끕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부처님을, 그것도 막 성불하신 부처님에게서 그야말로 가장 ‘따끈따끈한’ 가르침을 가장 먼저 받을 행운을 눈앞에서 놓쳐버린 인물입니다. 바로 우파카(Upaka)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파카는 아지와카(ājīvaka)교도입니다. 아지와카는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으니 그 범위 안에서 살아갈 뿐이라는 막칼리 고살라의 주장을 따르는 사명(邪命)외도입니다. 

 

어느 날, 우파카가 길을 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청년 한 사람(석가모니불)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품새가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심지어 빛이 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파카는 호기심이 일어서 이렇게 물었지요.

 

“존자여, 당신의 안색은 맑고 빛나는 군요. 당신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어느 분에게 출가하여 수행을 하고 있기에 이토록 반짝입니까?”

 

우파카의 이 질문 속에서 성불한 직후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온갖 고뇌와 열망과 번민을 말끔하게 씻어버린 붓다, 35세 청년 붓다의 그 반짝반짝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말이지요.

 

사실 우파카 이전에도 부처님에게 다가온 사람은 있었습니다. 성불 직후 2주째 되던 날 바라문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고, 3주째에는 상인 두 사람이 찾아와 음식을 공양 올렸습니다. 하지만 바라문은 교만한 마음을 떨치지 못해 평소 품었던 질문을 타성에 젖어 던지고서 부처님의 대답을 대충 흘려들었고, 상인 두 사람은 천신의 안내를 받고 찾아와 소박한 신심을 품고서 공양 올린 뒤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우파카는 깨달은 자, 붓다를 알아본 사람입니다. 그러니 위에서와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었겠지요. 35세의 젊디젊은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는 모든 것을 극복했고, 모든 것을 아는 자요. 온갖 것에 물들지 않고, 내게서 모든 것은 버려졌고, 갈애(taņha)가 부서져서 해탈되었소. 스스로 깨달았으니 그 누구를 의지했겠는가. 내게는 스승이 없으며, 천상과 인간계를 통틀어 나와 견줄 이가 없소. 나는 세상에서 완전한 자요, 가장 높은 스승이요. 나는 홀로 모든 것을 깨달아 고요한 경지에 이르렀고 열반을 얻었소. 지금 진리의 수레(법륜)를 굴리기 위해 까씨국(바라나시)로 가려는 길이오. 이 캄캄한 세상에서 불사의 북을 울리려 하오.”<마하왁가(율장 대품)>

 

우파카는 이 대답을 어떤 마음으로 들었을까요? 그저 ‘나는 어느 스승 밑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대답을 원했을 텐데, 상대방에게서는 너무 큰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게다가 스승의 이름을 알려주면 자기도 그 밑으로 달려가려 했는데, ‘스승 없이 홀로 깨달았다’라고 대답을 하고 있지 않나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이겨냈고 꿰뚫어 알았고 해탈했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면서 죽음을 벗어난 불사의 북을 울리려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저 소박하게 어느 종교단체에 들어가면 그리 될 수 있는지, 딱 이 정도가 궁금했던 우파카에게 부처님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일러주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스승이니, 내게서 불사의 해탈열반을 얻는 길을 알아보라고 말이지요. 사실 이 대답은 깨달음 직후에 부처님 입에서 나온 ‘붓다’라는 존재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메시지입니다. 

 

우파카는 아직 그 대답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기가 질렸던지 그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무한한 승리자라고 말하는가요?”

 

부처님이 대답합니다.

 

“번뇌를 쳐부수었기에 승리자라 하오. 나는 그릇된 법을 다 부수었소. 그러니 진실로 나는 승리자요.”

 

우파카에게는 ‘설마….’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번뇌를 완전히 부술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여러 스승들을 만나봤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외친 사람은 없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우파카는 ‘이 젊은 수행자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이렇게 대꾸하고 맙니다.

 

“아, 네.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그리고 그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불교역사에 부처님의 최초 수행제자로 기록될 수 있었을 기회를 이렇게 우파카는 놓치고 맙니다. 그는 왜 더 묻지 않았을까요? 어떤 수행을 하면 번뇌를 부술 수 있는지, 인간에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그릇된 법이란 건 무엇을 말하는지, 나도 당신처럼 수행하면 그렇게 당당하게 스스로를 말할 수 있는지….

 

짓궂은 사람들은 부처님의 첫 번째 교화는 싱겁게 실패로 끝났다고도 말합니다. 우파카가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부처님과 우파카의 이 만남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을 지나쳐 쭉 길을 걸어간 우파카는 사냥꾼의 딸 차파(Cāpā)를 만났고, 그 미모에 반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 살아갑니다. 수행자가 세속의 가장 노릇을 하며 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결혼생활에 크게 실망한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한테는 무한한 승리자인 친구가 있다. 난 그분에게 가겠다.”

 

그는 마음속 깊이 부처님의 그 당당한 사자후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다시 부처님을 찾아가 제자가 됩니다. 그의 아내 역시 부처님에게 나아가 비구니가 되었는데, 그 깨달음의 노래가 『테리가타』에 담겨 있습니다. 

우파카는 눈앞에서 부처님을 놓쳤지만 깨달음이 간절하지 않았으니 훗날을 기다려야 했겠지요. 다시 만나 더 깊은 법의 인연을 맺게 됐으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