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다섯 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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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세 늙은 수행자와 36세 젊은 붓다-우루벨라 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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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갠지스강에서 매일 일몰 때 거행되는 아르띠뿌자. 브라만 사제들이 신에게 불로써 예를 올리는 의식이다. 우루벨라 가섭이 경외시했던 불을 섬기던 사당과 불을 내뿜는 뱀은 아마 이와 같은 의식의 또다른 표현이 아닐까.<사진 김용섭>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뒤 전도선언을 하시며 부처님 당신은 우루벨라로 가시겠다고 말합니다. 우루벨라 가섭, 가야 가섭, 나제 가섭의 삼형제를 교화하기 위함입니다.

 

가장 큰 형인 우루벨라 가섭은 나이가 많아서 120, 둘째 형인 가야 가섭은 100, 막내 나제 가섭은 80세라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에 이 정도 나이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입니다. 이 삼형제는 바라문 계급에다 수행도 뛰어났고 거느린 제자를 다 합치면 1천 명에 달했고,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올리는 공양물도 상당했지요. 거기에다 나이까지 들었으니 이들 가섭 삼형제를 뛰어넘을 자는 인도 땅에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바로 그곳으로 36세 젊은 부처님이 찾아갑니다.

 

제가 저기 보이는 불을 모신 사당에서 하룻밤 묵었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우루벨라 가섭은 부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낯설고 젊은 수행자라 여겼을까요? 그는 곤란하다며 거절합니다.

 

저 사당에는 커다란 뱀이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독을 품고 있으며 불을 지키고 있어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겠다고 간청하는 바람에 우루벨라 가섭은 마지못해 허락합니다. 사당 안 한 곳에 자리를 깔고 고요히 선정에 들어가려던 부처님을 보자 뱀은 화가 치솟았고 이내 엄청난 불을 뿜어냈지요. <마하박가>에 따르면, 부처님은 삼매에 들어서 뱀의 불길보다 더 센 불을 뿜어내지만 부처님의 불은 뱀을 태워서 고통을 주고 죽여 버리는 불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여 뱀의 위세를 꺾기 위한, 딱 그 정도의 불길이었습니다.

 

한편, 젊고 낯선 수행자(부처님)가 불을 모신 사당 안으로 들어간 뒤 우루벨라 가섭과 그의 제자 500명은 마음을 졸이며 지켜봐야했지요. 어마어마한 불길이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 그토록 위풍당당하고 아름다운 수행자가 뱀에게 희생되었구나.”

 

하지만 다음날 아침, 사당 문을 열고 나온 이는 부처님이었고, 자신의 발우 속에 보잘 것 없이 작아진 뱀 한 마리를 담아서 우루벨라 가섭과 그의 제자들에게 보여주었지요.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조차도 두려워 가까이 하지 못했던 거대한 뱀을 단번에 제압한 이 젊고 낯선 수행자의 위력에 압도당했습니다. 게다가 이 수행자는 스스로를 붓다깨어난 자라고 불렀습니다.

 

이 하룻밤의 기적으로 우루벨라 가섭의 마음은 부처님에게 기울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출생 신분으로나, 수행 이력으로나, 사람들의 귀의와 존경으로나, 게다가 나이로 보나 젊은 부처님보다 나았습니다. 이 하나의 기적으로 무릎을 꿇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는 애써 생각을 다잡았습니다.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번뇌를 완전히 떨쳐버린 아라한인 나를 이기지는 못하리라.’

 

이 대목에서 잠깐 멈춰보겠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나보다 뛰어난 자를 만났을 때 깔끔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사람은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세웁니다. 우루벨라 가섭이 딱 그랬습니다.

 

그런데 120세 노령의 바라문 마음을 꿰뚫어본 젊은 부처님은 굳이 그의 자존심을 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수행이란,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니까요. 평생을 숲에서 제자들을 거느리며 수행하는 삶을 살아온 바라문이 마지막으로 맞설 상대는 부처님이라기보다는 나는 이 정도 인물이다라는 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 때문에라도 한껏 높은 자만심으로 단단히 스스로를 무장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우루벨라 가섭은 흔들리는 자신의 위상을 애써 감추면서도 젊은 부처님을 향한 존경심은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수행자시여, 이제부터 여기에 머무십시오. 내가 당신에게 매일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그날 이후 부처님은 우루벨라 가섭의 오두막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지내며 식사 때마다 그가 모시러 오면 함께 가서 공양을 마쳤습니다. 물론 그 사이마다 다양한 신통을 일으켜서 그를 압도하기도 했으니, 천상의 신들이 부처님을 향해 경배를 올린다거나 눈 깜짝할 사이에 아주 먼 국토에 가서 그곳의 이국적인 식물을 가져온다거나 가섭의 제자들을 위해 장작을 쪼개거나 불을 붙이거나 그 불을 끄거나 하는 신통력 등등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3천 가지가 넘는 신통기적을 보이는 한편, 우루벨라 가섭의 속마음을 환히 꿰뚫어서 응대하였지요. 그때마다 그는 부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또 그때마다 그는 그래도, 그래도 라며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낸 시간이 무려 석 달. 마침내 부처님은 우루벨라 가섭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며 말씀하십니다.

 

그대는 아라한이 아닌데, 아라한이라고 말합니다. 아라한이 되는 길도 알지 못하고 그 길도 제대로 걸어보지도 못했으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이 한 마디에 우루벨라 가섭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겠노라 맹세하고 그의 제자 500명도 함께 귀의하게 되지요. 우리가 그동안 자주 들어왔던 가섭 삼형제와 그 제자 천 명의 교화는 단 한 번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안거 석 달 동안 젊디젊은 부처님은 서두르지 않고 노심초사하지도 않고 덤덤히 우루벨라 가섭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상과 교만의 벽을 부수고 마음의 문을 열기를 기다렸습니다. 젊은 부처님의 담담한 대응도 놀랍고, 낯설고 젊은 수행자에게 기꺼이 승복한 늙은 우루벨라 가섭의 마음도 기껍습니다. 진리의 길에는 이렇게 멋진 만남이 가득합니다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