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네 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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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출가시킨 첫 번째 우바이-야사의 어머니


[회전]4면 자료.JPG

 

“내 아들 야사여, 네 어머니가 지금 몹시 슬퍼하고 있다. 네 어머니가 지금 비탄에 젖어 있다. 슬픔이 너무 깊고 커서 몸과 마음을 크게 해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는구나. 네 어머니를 살려다오.”

 

이른 새벽, 인적이 끊긴 숲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자 말했습니다. 아들 야사가 무슨 일을 했기에 그 어머니가 크게 상심했다는 것일까요?

 

부처님 생애를 읽어보셨다면 성불하신 후 얼마 되지 않아 부잣집 청년 야사가 출가하는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야사는 온갖 쾌락을 누리며 지내고 있었지요. 워낙 부잣집이라서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바깥세상의 고단한 노동 따위는 야사 삶에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부모는 아들 야사가 세상의 근심을 알지 못하고 즐거움과 환락만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자식에게는 무엇을 해주어도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지고 더, 더, 더 무엇인가를 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마하박가』에 따르면, 부모는 아들 야사에게 겨울과 여름, 그리고 우기에 지낼 전용 별장을 지어주었고, 야사는 우기가 되면 넉 달 동안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악사들과 무희들에 둘러싸여서 시중을 받으며 즐기느라 별장 아래로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이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아주 이른 새벽, 야사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기름등불이 밤새도록 어둠을 밝히고 있었고 주변은 고요했습니다.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몸을 일으킨 야사의 눈에 경악할 만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겨드랑이에 비파나 장구를 낀 채 잠들었거나 작은 북을 목에 올려 둔 채 잠든 여인도 있었고, 머리가 산발이 되어 침을 흘리거나 잠꼬대를 하는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무희들은 온갖 교태를 부리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주인인 야사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를 쓰다 그가 잠에 곯아떨어지자 자신들도 그대로 홀 바닥에서 잠들어 버린 것이지요. 눈앞에 펼쳐진 쾌락의 적나라한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야사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아, 이 끔찍한 모습이 쾌락의 끝인가.’

 

야사는 여인들 사이를 헤집고 홀 밖으로 나왔습니다. 화려한 황금 샌들을 신은 그의 발은 무엇엔가 이끌린 듯 성 밖으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 새벽 경행하고 있는 숲 속의 부처님 앞에 이르렀습니다. 여전히 입으로는 ‘끔찍하구나, 끔찍하구나’를 중얼거리며 말이지요. 그런 야사를 향해 부처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에는 끔찍한 일이 없습니다. 괴로움도 없습니다. 야사여! 여기 앉으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들려줄 말이 있습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처참하고 끔찍한 일을 겪으면 본능적으로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게 마련인데 바로 그런 야사에게 ‘그 끔찍한 일은 여기에는 없다’며 자리를 권하는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는 전혀 다른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아주 맑고 깨끗한 기쁨,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깊은 숲 속 샘물을 들이켠 듯한 신선한 각성….

 

야사는 황금샌들을 벗고 맨발로 부처님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재물을 지녔다면 기꺼이 이웃과 세상과 나누어야 하며, 스스로는 반듯하게 몸가짐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여태 야사가 누렸던 끔찍한 쾌락과는 전혀 다른 천상의 기쁨을 얻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뿐만 아닙니다. 쾌락에 젖는 일이 얼마나 끔찍하고 위험한 일인지, 반대로 쾌락에서 벗어나 숲속을 찾아오듯 ‘멀리 떠남’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도 들려주었습니다. 야사의 마음이 조금씩 열렸고, 부처님을 향한 믿음이 커져갔습니다. 가르침을 조금 더 듣고 싶은 기대가 일어나자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들려주었지요. 

 

하지만 이른 새벽 조용한 숲속 빈터에서 번지는 법열(法悅)과는 달리, 으리으리한 대저택에서는 커다란 혼돈과 공포가 닥쳤습니다. 아들 야사가 이른 새벽 끔찍하다고 중얼거리며 집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 즉시 아들의 뒤를 좇아 나섰고, 어머니는 집안에서 온갖 불행한 일을 상상하며 몸을 떨었지요. 

 

‘세상 그 누구도 누릴 수 없는 행복을 안겨주었는데 왜 갑자기 끔찍하다며 뛰쳐나갔을까?’

 

게다가 그에게는 아름답고 젊은 신부도 있는데 말입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저택에서 부와 행복을 누리며 지내던 어머니는 자신의 바람대로 살아가리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아들에게 뜻밖의 ‘일탈’이 일어난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바로 지금, 아들이 세속의 온갖 쾌락을 뒤로 하고 수행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다행히 아들을 찾은 아버지는 어머니의 충격을 염려하여 꼭 집을 방문해주기를 요청했고, 다음 날 아들은 부처님의 시자가 되어 아침 공양을 하러 자기 집을 찾았습니다. 『마하박가』에서는 야사의 어머니와 그 아내가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 커다란 믿음을 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들은 불교 역사에서 최초의 재가여자신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자꾸 상상하곤 합니다. 그 당시 부처님은 35세, 혹은 36세의 청년이어서 야사와 그리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을 테고, 세상에는 아직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현에 대한 그 어떤 소문도 퍼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낯선 성자의 뒤를 따라온 아들의 변모는 그 어머니에게는 또 하나의 커다란 충격일 수 있을 터인데 저 큰 부잣집 마나님이 어떻게 이 모든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아들의 스승을 향해 스스로 믿음을 낼 수 있었을까요. 그녀도 전생에 마음공부를 아주 많이 해왔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들을 향한 무한하고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이 부처님을 향해서도 이어진 것은 아닐까요. 불교 최초의 우바이 탄생에는 귀한 아들을 스님으로 보낸 어머니의 결단이 있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