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세 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2-10-05  | 수정 :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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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은은한 숲 속에서의 참회-아자타삿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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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드르 부조. 마가다국 빔비사라왕과 베데히왕비가 부처님께 공양물을 올리고 있다.(사진 김용섭)

 

 

한 나라의 왕위를 놓고 부왕과 그 아들인 왕자가 벌이는 갈등은 새삼스럽지 않다. 권력의 정점인 그 자리는 언제든 주인이 뒤바뀔 운명이기 때문이다. 지난 호에 다룬 빔비사라왕도 그 권력의 찬탈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빔비사라왕은 정비(正妃)인 베데히 왕비와의 사이에 아자타삿투라 불리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아자타(Ajāta)는 ‘태어나기 전’이라는 뜻이고, 삿투(sattu)에는 ‘(아버지의) 적, 원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와 원한을 맺고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너무나 불길한 뜻이 담겨 있어, 실제로 그 이름으로 불렸을지 의문이 일 정도다. 

 

이 사연의 중심에는 그 어머니가 있다. 베데히 왕비는 임신하자 남편인 빔비사라왕의 오른팔에서 낸 피를 마시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일어났다. 남편의 몸에 상처를 내고 그 피를 마신다는 것도 끔찍한데 남편은 한 나라의 군주가 아니던가. 왕비의 이 욕구는 왕을 향한 모반이라 여겨도 충분하다. 임신한 왕비는 수척해져 갔다. 왕이 걱정하며 이유를 물었지만 차마 ‘전하의 오른팔에서 낸 피를 마시고 싶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왕비를 사랑하는 마음에 왕은 다그쳐 물었고 왕비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이유를 말했다. 뜻밖에 왕은 흔쾌히 자신의 오른팔을 내밀어서 피를 내어 황금잔에 담아 아내에게 마시게 했다. 

 

이 소식은 왕궁 사람들에게 퍼졌고, 예언가들은 불행의 전조라 여기고서 태아를 지울 것을 권했다. 왕비 역시 어질고 착한 왕이 훗날 자식에게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할 수는 없어 온갖 수단을 써서 낙태하려 하였다. 하지만 빔비사라왕 또한 생명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며 왕비를 말렸고, 태아는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고서 달수를 채워 지상에 첫 울음을 터뜨렸다.

 

왕자가 태어난 후 왕궁에서 이 불길한 입덧을 거론했을까? 너무나 불경스럽고 흉측해서 함구령이 내려지지는 않았을까? 아버지의 피를 마시며 태어난 왕자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을까? 그러나 아버지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에게 귀의한 이후 사람들의 도타운 신망을 받으며 어질게 나라를 다스렸고, 베데히 왕비와 아자타삿투 왕자를 향해서도 지극한 사랑을 베풀었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곳에서 벌어졌다. 부처님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지극한 공양에 질투가 난 데바닷타가 왕자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부왕의 어진 통치 아래 왕위계승서열 1위로서 자리를 지키던 왕자를 부추겨서 “왕자님은 부왕을 처치해서 새로운 왕이 되고, 나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몰아내서 새로운 부처가 됩시다”라며 유혹한 것이다.

 

왕자는 카리스마 넘치는 데바닷타의 유혹에 흔들렸고, 부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시도했다. 데바닷타는 온갖 술수를 썼지만 끝내 진리의 스승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몰아내지 못했다. 다행히 마가다국 왕궁에서는 부왕 빔비사라가 권력욕에 눈먼 아들에게 평화롭게 정권을 물려주었다. 

 

거기에서 멈추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새로운 왕이 된 아자타삿투에게 또다시 데바닷타의 유혹이 미쳤다. 부왕을 살려두면 추종하는 세력들이 당신을 해칠 터이니 아예 그 불행의 씨앗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자타삿투왕은 아버지를 옥탑에 가두었고, 음식물을 주지 않았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감옥에서 서성거리는 아버지의 뒤꿈치도 잘랐다. 이 모든 비극을 처음부터 지켜본 어머니 베데히 왕비는 아들에게 간청해서 간신히 면회를 허락받았는데, 면회하러 갈 때면 제 몸에 꿀을 발라 굶어 죽어가는 남편에게 먹였다. 이 일은 들통 났고, 결국 어머니의 면회는 금지됐다. 

 

높은 누각에 갇혀 굶주린 채 죽어가야 하는 아버지 빔비사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아들을 사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그는 사랑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고, 세상은 그와 상관없이 쓰라린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아자타삿투왕이 정신을 차리긴 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아들을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던 중이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 베데히가 이렇게 탄식했기 때문이다. “전하의 아버님이 딱 그와 같이 어린 전하를 품에 안고 사랑했었소.”

 

그동안 자신이 무엇에 홀려 아버지 자리를 빼앗고,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것일까. 일설에는, 뒤늦게 잘못을 뉘우친 아자타삿투왕이 신하를 감옥으로 보내어 부왕을 모셔오라고 명했는데, 죽음 직전까지 내몰린 빔비사라왕은 신하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신의 처형일이 다가왔음을 알고서 절명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마가다국을 떠났다. 원래 한 곳에 정착하는 분이 아니라 유행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천륜을 저버린 비극을 지켜봐야 했던 부처님은 마가다국 라자가하에 조금도 머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자타삿투 왕은 아버지를 죽인 죄인이 됐고, 부처님마저 떠나가게 한 박복한 자가 됐다. 나랏일에 매달리는 한낮이면 그럭저럭 버티겠지만 신하들이 물러간 밤 시간이면 아자타삿투왕의 마음에는 죄책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누군가에게 나아가 길게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자신의 죄를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고픈 열망이 끓어올랐다. 

누구에게 나아갈 것인가. 세상 모든 사상가나 종교가들을 만나볼 만큼 만나봤지만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도 못했고, 그저 자신들의 주의주장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때마침 주치의 지바카가 나서서 왕을 부처님이 머물러 계시는 자기 동산으로 안내했고, 마침내 아자타삿투왕은 부처님에게 나아갈 수 있었다. 휘영청 보름달이 눈부시게 세상을 밝히고 있는 한밤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온갖 번뇌로 지글지글 끓고 있던 자신과 달리 달빛을 받으며 명상에 잠긴 수많은 수행승들은 평화롭기 그지없었고, 그 고요함에 매료당한 왕은 부처님에게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있었다. 부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죄악이 그대를 덮쳐 어리석고 미혹하고 악독하게도 그대는 권력 때문에 정의로운 법왕이셨던 아버지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악을 죄악이라 보고 이치에 맞게 고백하였으니 나는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죄악을 죄악이라고 보고 이치에 맞게 고백하고 미래에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성자의 계율 속에서 성장하는 길입니다.”(<디가 니까야> ‘사문과경’)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자신의 패륜을 스스로 성자 앞에 나아가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며 참회한 아자타삿투는 이제 그 무거운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부처님 곁을 떠나는 아자타삿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처님은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하셨다.

 

“부왕을 해치지 않았다면 그는 이 자리에서 성자의 첫 번째 단계에 들었을 것을….”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