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언의 산실-상엄심인당

밀교신문   
입력 : 2020-08-28  | 수정 : 202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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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경제의 중심지에 세워진 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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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 16(1962)년은 종단 내외적으로 적극적인 교세 확장과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회당 대종사는 심인당 순방과 종립학교 방문에 심혈을 기울였다. 진기 14년과 15년은 역경 사업과 각종 의식 정비를 위해 심인당 신설보다는 기존의 심인당을 개·보수하며 교화의 안정을 위해 진력했다면 진기 16년은 심인당 개·보수와 함께 교세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개설된 심인당으로는 오평심인당(폐쇄·1월 31일) △다산심인당(육대·폐쇄·2월 16일) △원당심인당(폐쇄·4월 30일) △고천심인당(폐쇄·7월 21일) △공정심인당(원선·폐쇄·9월 10일) △김천심인당(상엄·10월 17일) △동촌심인당(폐쇄·10월 19일) △달성심인당(폐쇄·10월 19일) △대동심인당(사천왕·폐쇄·10월 22일) △득도심인당(11월 23일) △원력심인당(폐쇄·11월 29일) △이정심인당(폐쇄·12월 26일) △대현심인당(경전·12월 26일) 등 13곳이며, 서부리심인당(선혜·1월 27일), 입암심인당(응신·6월 13일), 내남심인당(항복·폐쇄·7월 25일), 원당심인당(폐쇄·10월 10일), 법산심인당(폐쇄·10월 15일), 제주심인당(식재·10월 18일). 다산심인당(11월 29일), 신천동심인당(시경·11월 29일) 등이 개·보수 신축됐다.
 
특히, 진기 16년도인 1962년에 군사정부가 6월 10일 긴급통화조치법을 발효 시켜 화폐개혁을 단행함에 따라 희사금의 현금 관리가 많았던 종단은 예금 손실이 엄청남에 따라 교세 확장과 전당 신설 계획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많은 지역의 도량을 개설하게 됐다.
 
이 번호에는 김천심인당(상엄심인당)을 살펴본다.
 
상엄심인당(경북 김천시 자산3길 19)의 옛 주소는 김천시 성내동이다. 성내동은 김천역 안쪽에 있어 성안·성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상신기동과 갈마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성내정이라 했다가 1946년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식으로 고침에 따라 정을 동으로 고쳐 성내동이라 불러오고 있다.
 
김천시 자료에 따르면 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김천은 조선시대에는 전국 5대 시장의 하나였으며 수많은 명현과 충신, 열사를 배출해 낸 고장이다. 삼한시대는 감로국(감문국), 주조마국으로 불리었으며, 1914년 김산, 지례(증산면 길방리 제외) 개령군과 성주 신곡면을 통합해 김천군으로 불렀다. 1917년 김천면이 김천특별면으로 지정됐으며 1931년 김천특별면이 김천읍으로 승격했다. 1949년 김천읍이 김천부로 승격되고, 다시 김천시로, 김천군은 금릉군으로 개칭됐다. 그리고 1983년 금릉군 4개 동이 김천시에, 금릉군 2개 동이 선산군에 편입됐으며, 김천시 22개 동이 13개 동으로 통폐합됐다. 1995년에는 김천시와 금릉군을 통합해 김천시가 설치되고 아포면이 아포읍으로 승격했다. 1998년에는 김천시 13개 동을 8개 동으로 통폐합되고 2000년 성내동과 남산동을 성남동으로 통합했다. 2008년 용암동과 성남동(성내동)을 자산동으로 평화동과 성남동(남산동)을 평화남산동으로 통합하고 2014년에는 율곡동이 설치됐다.
 
자산동의 유래는 자산동은 성내동과 모암동에 걸쳐 있던 자산이라는 산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 산의 바위가 해 질 무렵이면 자주색 빛을 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동으로는 모암동 시가지와 이어지고 서로는 평화동과 남으로는 남산동과 북으로는 서에서 동으로 흘러내리는 직지천을 경계로 하여 신음동과 마주한다. 1905년 무렵 경부선 철도가 개설되고 뒤이어 국도가 만들어짐에 따라 1920년을 전후하여 시가지가 이루어졌다.
 
동쪽으로 지좌동과 서쪽에 평화남산동, 남쪽 양금동, 북쪽 대신동과 접해 있다. 4동(37통) 185반으로 감호와 용두, 모암, 성내를 관할한다.
 
자산동 지역은 예로부터 ‘아랫장터’라고 불릴 정도로 김천의 경제뿐만 아니라 상주, 성주, 거창, 칠곡, 구미, 영동 등의 지역 경제를 주도해 온 곳이기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김천이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명성을 갖게 한 근원지이기도 하다. 특히, 자산동은 건어·수산물, 청과, 농기계, 농약, 종묘, 가구, 목공, 한복, 의류 등으로 유명하다. 2020년 5월 기준으로 인구는 6,856명이며, 교육기관으로는 고등학교 1개, 중학교 1개, 초등학교 1개, 유치원 1개, 어린이집 1개가 운영되고 있다, 공공기관은 우체국과 시 교육청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상엄심인당 초대 스승은 불멸심(이상연) 스승이다. 진기 19(1965)년 2월까지 3여 년을 책임졌다. 이어 진기 20(1966)년 1월부터 진기 24(1970)년 9월까지는 도흔(박현기)·일성화(정점선) 스승이 최정심인당에서 부임해와 희락심인당으로 전출 가지전까지 4년간 교화에 매진했다. 도흔·일성화 스승이 주석하던 시기인 진기 22(1968)년 5월 23일 심인당이 개축 헌공불사를 봉행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도흔 스승은 성서심인당을 시작으로 최정, 상엄, 희락, 남선, 아축, 정지, 탑주, 각성심인당 주교를 두루 거치면서 심인당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진기 18(1964)년 초대 종의회 의원 활동을 시작으로 제2, 3, 4, 6, 7, 8, 9대 종의회 의원과 제7대 종의회 의장, 제4, 5대 교육원장, 제11대 통리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진기 60(2006)년 제10대 총인에 추대됐다. 진기 56(2002)년 기로 진원했으며 현재 항설심인당에서 주석하고 있다.
 
도흔·일성화 스승 후임으로는 진기 24년 9월 단행(양수득 25년 2월 부임)·자비화(박석남) 스승이 항설심인당에서 부임해 진기 52(1998)년 자비화 스승이 기로 진원할 때까지 28년간을 교화에 매진했다. 단행 스승은 제1, 2, 4대 종의회 의원을 역임하면서 종단발전에 힘썼으며, 진기 38(1984)년 4월 1일 열반했다. 자비화 스승은 진기 71(2017)년 11월 27일 열반했다. 단행 스승의 모친은 항설심인당에서 교화한 해인월(손남희) 스승이다. 이어 진기 52(1998)년 5월 익광(김홍권)·묘행성(하승자) 스승이 진기 68(2014)년 12월 사직때 까지 자리를 지켰다. 현재 혜심(류태광)·혜인주(박소현) 스승이 교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상엄심인당
진기 16(1962)년 10월 17일 상엄심인당 개설
                           불멸심(이상연) 스승 임명
진기 17(1963)년 1월 14일 성내동 주택 매수 개수
                 2월 10일 상엄심인당 준공
진기 19(1965)년 2월 4일 향가심인당으로 전출
진기 20(1966)년 1월 14일 일성화(정점선) 스승 최정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21(1967)년 12월 31일 도흔(박현기) 스승 주교 임명
진기 22(1968)년 2월 29일 심인당 개축 착공 
                5월 23일 심인당 헌공불사
진기 24(1970)년 9월 21일 도흔·일성화 스승 희락심인당으로 전출
                           자비화(박석남) 스승 항설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25(1969)년 2월 13일 단행(양수득) 스승 주교 임명
진기 35(1979)년 6월 29일 자비화 스승 주교 임명
진기 38(1984)년 4월 1일 단행 스승 열반
진기 52(1998)년 5월 12일 자비화 스승 기로 진원
                 5월 14일 묘행성(하승자) 스승 부임
진기 59(2005)년 5월 28일 익광(김홍권) 스승 부임
진기 68(2014)년 12월 4일 익광·묘행성 스승 퇴직
                 12월 30일 혜심(류태광)·혜인주(박소현) 스승 부임
진기 70(2016)년 7월 1일 본존장엄가지불사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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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기자 san108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