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의 세계를 열다

밀교신문   
입력 :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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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당대종사의 수행과 진각(5)

(6) 득병의 인생계기
대종사는 귀향하던 중 대구에서 한 달여간 머물며 그간의 심경을 정리하였다. 그때 아들(서주 손제석)이 경북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설(1946년 2월 2일)이 다가오자 포항으로 돌아왔다. 설을 맞아 고향에 돌아오자 모친이 생식의 중단을 권유하였다. 생식을 2년 가까이 하면서 수행정진과 사회활동을 병행하였다. 효순심이 강한 대종사는 모친의 권유에 수순하고 화식으로 전환하였다. 그런데 설을 지내고 득병을 하였다. 득병의 직접 원인은 화식 전환의 부작용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생식과 수행정진, 그리고 사회활동 특히 상경의 생활 등으로 심신의 무리를 느끼고 있었다. 또한 사업과 김두하의 재산관리, 그리고 삼 사건 등으로 심려가 깊었다. 그런데 그 당시 널리 퍼진 전염병 이질이 또한 큰 작용을 하였다.
 
대종사는 득병의 고통 속에서도 약을 쓰지 않았다. 득병의 치유를 위해 수행정진에 용맹을 더하였다. 약을 쓸 것을 권유하던 모친도 대종사의 불공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병세는 점점 더하여 갔다. 그러자 그해 가을에 대구의 아들이 기거하는 집으로 갔다. 치병의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병세는 사경으로 몰아갔다. 가족은 수의까지 마련하였다. 이처럼 득병은 모든 것을 놓도록 이끌어 갔다. 병세를 잡기 위한 현실적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가족들은 치병을 위한 노력에 전력을 쏟았다. 대종사의 수의를 짓고 있는 어느 날 한 인척이 집에 들러서 농림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곳에 병고 해탈을 위한 수행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종사는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렇지만 주위 사람들은 끝까지 간청하였다.
 
농림촌은 대구시 서쪽 달서구 감삼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농토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동네를 형성한 곳이었다. 이곳에 점차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자 그냥 농림촌이라 불렀다. 여기에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을 하는 한 수행자가 있었다. 가문의 비전(秘傳)을 전수받은 그 수행자는 새로 형성되고 있는 농림촌을 찾아서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을 하였다. 자신이 가진 수행력으로써 자연히 동네 사람들의 어려운 일들을 돌봐주면서 상당한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수행자를 속칭 관심보살(觀心菩薩)이라 불렀다. 관세음의 염불을 빠르게 하는 소리가 마치 관심(觀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대종사는 가족의 간청에 못 이겨서 농림촌으로 갔다. 득병이 농림촌으로 인도한 것이다. 이렇게 득병은 결국 세간 생활에서 출세간 생활로 돌리는 인생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득병을 인연 계기로 삼아서 농림촌에서 수행정진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종사가 농림촌에 도착하자 그 수행자가 반갑게 맞으면서 법당으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큰 인물이 오실 줄 알았다”라고 하면서 아랫목에 좌정하게 하고 큰절을 올리려 하였다. 대종사가 만류하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7) 농림촌의 대정진
대종사는 집에 돌아와서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고 환희함을 느꼈다. 며칠간 사색하면서 농림촌이 새로운 수행처로서 적합하다는 심경이 일어났다. 이곳에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신심을 세우고 정진의 준비를 갖추어서 농림촌에 갔다. 이때가 늦가을 음력 동짓달이었다. 농림촌에서 관세음 염불로 49일 정진을 시작하였다. 관세음정진은 이미 경험이 있었다.
 
그 수행자는 정진 중에 관세음 염불 등 불법에 대하여 가르침을 청하였다. 자신은 불법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배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종사는 그 수행자에게 불법을 바르게 가르쳐서 수행에 삿됨을 없애려 노력하였다. 이렇게 49일 관세음 염불수행을 회향하였다.
 
대종사는 농림촌과 그곳의 수행자를 최후의 수행정진에 디딤돌로 삼았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길목에는 항상 어떤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대종사의 생애와 수행에서 득병은 세간생활을 정리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수행자와 농림촌을 또 하나의 계기로 삼아서 최후의 수행정진을 하였다. 그리고 깨달음과 중생교화의 길로 나섰다. 인생의 전환점에는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는 계기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인연 계기라 한다.
 
누구든 인생에서 인연 계기가 된 어떤 것이든 소중하게 여기고 잘 활용해야 삶을 잘 개척할 수 있다. 그래서 후일 농림촌 수행의 인연 계기가 된 수행자에 대하여 각별하게 관심을 가졌다.
 
대종사는 49일 관세음 염불정진을 예비정진으로 삼고 다시 육자진언 염송의 100일 정진을 마음에 두었다. 49일 관세음 염불정진 중에 육자진언이 새삼스럽게 마음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육자진언은 그동안 수행하면서 이미 잘 알고 있던 진언이었다. 그런데 수행 중에 문득 ‘관세음보살 미묘본심 육자진언’이 마음에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관세
 
음보살 염불은 관세음보살의 미묘한 본심을 일으키는 수행이다. 그리고 관세음 명호 염불보다 관세음보살 본심진언인 육자진언을 염송하는 수행이 더욱 수승하다. 관세음 염불 49일 정진의 끝 무렵에 이처럼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같이 정진하는 수행자에게 육자진언 염송을 가르쳐 주었다. 그 수행자의 관세음 염불정진이 사도에 빠지지 않고 정도로 인도하려는 뜻도 들어 있었다. 그 수행자는 대종사에게 본인은 관세음 염불수행을 더  하고 대종사는 육자진언 염송을 하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대종사가 육자진언으로써 100일 정진을 시작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관세음 명호 염불을 중단하고 육자진언의 염송을 한 점이다. 대종사는 육자진언과 언제 인연을 맺었을까? 이에 대하여 구체적인 말씀을 남기지 않았다. 육자진언을 구법정진 중에 자연스럽게 인연하였으나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관세음 염불 49일 정진 중에 육자진언을 새롭게 인식하였다. 대종사가 이러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구법정진 중에 불교의 불성사상에 큰 관심을 가진 까닭도 있었다.
 
대종사는 100일 정진을 그해 음력설을 지낸 후에 시작하였다. 1947년 음력설은 양력 1월 22일이었다. 100일 정진을 위해 토담집을 새로 지었다. 농림촌의 수행자들을 곁에서 돕던 이종석(李鍾錫)이 언 땅을 파서 매우 힘들게 집을 지었다. 45세인 1946년 늦가을에 농림촌에 가서 며칠을 보내고 49일 불공을 시작하였다. 또한 49일 불공을 회향한 후 설이 겹치고 집을 짓는 등의 기간에 100일 정진의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양력 2월 초에 100일 정진을 시작하였다. 100일 정진에는 모친이 함께하였다. 대종사의 건강을 무척 염려한 모친은 49일 불공으로 병세가 크게 호전되자 아들의 정진에 동참하여 곁에서 보살폈다. 그리고 정진 중에 무염식을 하였다.
 
대종사의 100일 정진은 몇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처음 고성염송(高聲念誦)의 정진을 하였다. 그리고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동참하였다. 동참한 사람이 고성으로 육자진언의 염송을 하였다. 농림촌에서 함께 정진에 동참한 사람 중에는 후에 보원심인당에서 수행한 구 보살 등도 있었다. 그리고 100일 정진 중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불법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대종사는 회향 13일 전부터 몇 가지 수행 영험을 보였다. 염송정진 중에 낙루(落淚)하면서 말문이 막히고, 안면과 몸이 부어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진은 계속되었다. 말문이 막혀서 심송(心誦)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동참한 사람들은 고성염송으로 더욱 용맹정진하였다. 그리고 깨달음 일주일 전부터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고 연필로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였다. 무엇인가 정확하지 않은 발음을 하면서 처음 ‘도(道)’를 쓰기도 하고, 4일 전에는 완전한 발음을 하면서 ‘정도(正道)’를 노트에 쓰면서 말문이 열렸다. 그때 동참한 사람들도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환부가 터지는 등 여러 신이(神異) 현상을 보였다. 이처럼 정진 중에 겪은 심신의 체험은 대종사의 수행 과정을 보여주는 심비(深秘) 현상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대종사는 100일 정진을 회향한 익일(翌日) 5월 16일 육자진언의 묘리가 터득되고, 심신이 상연(爽然)하여지며, 일체의 이치가 밝게 내관(內觀) 되면서 심중(心中)에 환희심이 충만하였다. 그리고 문득 동천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불은(佛恩)이 무변하고 천지(天地)의 은혜가 지중하게 느껴지면서 홀연히 깨달음을 성취하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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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종 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