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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 더 빨리

이경자(소설가)   
입력 : 2004-08-30  | 수정 : 200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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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고층 아파트에 사는데 이제 일 년 되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문을 닫게 하는 단추가 있다. 그걸 누르지 않고 기다리면 문은 저절로 닫히는데 그 기다리는 시간이 5초가 안 된다. 그런데 대부분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자동적으로 그 단추를 누른다. 왜 사람들은 5초도 못 기다릴까. 무엇이 급할까. 초를 다투도록 급한 일이라면 죽음과 관련되었겠지, 아니면 큰돈이거나. 하지만 어른은 물론 아이와 노인들도 그런다. 몇 달이 지나서 나는 이 현상이 우리들의 '집단 조급증'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타자마자 그걸 누르면 슬며시 말했다. 이 단추를 누르면 에너지 소모가 많대요. 몇 초만 기다리면 자동으로 닫히거든요. 하루는 어떤 중년 남자가 타자마자 닫힘 단추를 눌렀다. 내가 잠깐 기다리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했더니 단숨에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아줌마. 걱정하지 마시고 이거 누르세요. 거의 돈 안나온다고 봐도 됩니다. 한 번 누르는데 3원쯤 될라나?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바보가 되었다. 몇 년 전 13억 중국 인구 중에서 겨우 몇 만 명쯤 남아 있는 소수민족인 '모소족'이 살고 있는 오지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계사회(母系社會)를 이루고 사는데 내가 보고 느끼고자 한 것은 바로 그 모계사회의 모든 것이었다. 그들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 교통수단은 호수에서는 노 젓는 배, 길에서는 말을 이용하고 있었다. 최근에 자동차가 들어왔지만 비싸서 특별하지 않으면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과 지내는 동안 나보다 거의 십 수년씩 나이가 어린 여자들과 수 십리 떨어진 시장으로 걸어갔는데 아무 일도 없는 내 걸음이 가장 빨랐다. 내가 왜 이러지? 곧 반성하고 걸음을 늦췄는데 또 빨라지곤 했다. 그들의 성품은 온화하고 삶은 소박했다. 그 성품과 삶의 질이 자연을 닮은 속도에서 온다는 걸 나중에 이해했다. 우리의 조급증은 출발과 목표만 있고 과정은 묵살시킨다.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사랑의 마음은 목표달성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러나는, 향기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