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언의 산실-능인심인당

밀교신문   
입력 : 2020-05-12  | 수정 :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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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강 이남 지역 교화를 위해 건립된 최초의 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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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심인당이 진기 9년 11월 20일 준공된 영등포심인당(능인심인당)이다.
 
밀각심인당(진기 6년 9월 29일)이 서울 왕십리에 지어진 후 3년여 만에 한강 이남에 지어진 곳이다. 
 
영등포는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동네이지만 지명의 유래는 확실하지가 않다. 옛날에 음력으로 2월 초하루를 영등일(靈登日)이라 하여 보름까지 여의도 샛강변에서 성행된 영등굿과 관련하였거나 또는 옛날 마을의 영등신에게 올리는 당굿인 영등굿과 관련된 영등(靈登)에 강이나 바다의 물가를 나타내는 지명인 포(浦)가 합쳐져 영등포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지금은 한자로 영등포(永登浦)를 쓰고 있다.
 
특히 영등포는 한국전쟁 당시 육군본부가 영등포 관내에 있어 영등포라는 이름이 부각되었고 많은 피난민이 이곳을 거쳐 갔다. 특히 1951년부터 53년까지 서울시청이 부산에 있을 때는 연락사무소가 영등포에 두었으며, 한강 도강이 제한되었기에 북상하지 못한 다수의 피난민 집결지가 되었다.
 
영등포구, 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 동작구, 서초구 등 한강 이남의 중서부 전역을 아우르는 엄청난 지역을 관할하던 구였다. 즉 강남구와 강동구, 송파구를 제외한 한강 이남의 전 지역을 관할했을 당시의 면적은 208㎢로 서울시 면적의 34.4%에 이르렀으며 인구수도 132만으로서 시 전체 인구수(585만)의 22.6%를 차지했다.
 
또한, 경부선, 경인선 철도의 분기점이 되며 경제발전을 주도하고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후 최초의 현대식 개념의 신도시인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영등포는 우리나라 정치, 경제, 언론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 영등포구는 영등포동, 영등포 본동, 여의도동, 당산 제1, 2동, 도림동, 문래동, 양평 제1, 2동, 신길 제1, 3, 4, 5, 6, 7동, 대림 제1, 2, 3동 등 18개의 행정동이 있다. 면적은 24.37㎢이다.
 
이처럼 1960년의 후반기부터 1980년까지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고도성장 중심에 영등포 지역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능인심인당(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8길 6)이 위치한 곳은 2008년 9월 영등포1동과 신길2동을 영등포 본동으로, 영등포2동과 영등포3동을 영등포동으로 통합되었으며, 2014년 1월부터 도로명 주소가 전면 도입되면서 영등포구 영신로로 변경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능인심인당은 진기 27(1973)년 개축 헌공불사에 이어 47년 만인 진기 74(2020)년 새로운 도량의 면모를 갖췄다.   
 
능인심인당은 코로나19로 인해 헌공불사를 연기하고 4월 14일 본존장엄가지불사를 먼저 봉행했다. 행사는 경정 총인예하를 비롯해 통리원장 회성 정사, 교육원장 덕정 정사, 서울교구청장 능원 정사 등이 참석했다. 능인심인당은 연면적 708㎡에 지상 4층 건물로 1층 주차장, 2층 심인당, 3층 법담실 및 자성학교, 4층 사택이 들어섰다.
 
이곳 심인당의 첫 스승은 이상옥 스승 부임했지만 2년여 만인 진기 11(1957)년 9월 사직했다. 이어 대구 남산동에서 부임해 온 대자(김후학) 스승이 진기 11(1957)년 10월부터 진기 40(1986)년 12월까지 30여 년간 교화를 책임졌다. 대자 스승은 1931년 대구에서 출생했으며 진기 4년(1950년) 입문해 진기 9년(1955년) 대구 남산동심인당(현 희락심인당)에서 첫 교화를 시작했으며 원의회 의원과 사감위원, 삼매야계단 증명아사리 등을 역임하는 등 종단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진기 42년(1988년) 1월 1일 기로 진원했으며 진기 57(2003)년 6월 19일 열반에 들었다.
 
대자 스승 후임에는 일정(현성하)·자각정(유순자) 스승이 명선심인당에서 부임해 진기 59(2005)년 12월까지 19년간 서울 남부 지역 교화를 책임지며 심인당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일정 스승은 진기 59(2005)년 12월 기로 진원할 때까지 올곧은 수행정진과 강인한 열정으로 포교와 교화에 임했다. 진기 49(1995)년 종사, 진기 57(2003)년 대종사 행계를 품수했으며, 삼매야계단 증명아사리와 갈마아사리를 맡았다. 종무행정에 있어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겼던 일정 정사는 제3~9대 종의회 의원과 종의회 부의장, 통리원 사회부장, 홍교부장, 총무부장, 재무부장을 두루 역임했으며, 제19대 사감원장, 제7대 교육원장을 지냈다. 청년포교에도 큰 관심을 가져 전국청년회 지도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일정 스승은 진기 67(2013)년 7월 12일, 자각정 스승은 진기 64(2010)년 5월 20일 열반했다. 진기 59년 12월부터 진기 63(2009)년 12월까지 4년동안 불정심인당에서 부임해온 회성(김봉갑)·정각주(박인순) 스승이 책임졌다. 이어 상명(송귀영)·서원명(곽형종)이 진기 64(2010)년 8월까지, 수각(김치원)·선법지(곽영진) 스승이 진기 67년(2013) 10월까지 차례로 교화에 임했다. 현재 능인심인당은 수혜(손석대)·법신생(이은주) 스승이 진기 67(2013)년 10월 29일 부임해 교화를 이어가고 있다.
 
 
능인심인당
진기 9(1955)년 8월 22일 심인당 착공  
                    11월 20일 심인당 준공
                    12월 7일 이상옥 스승 임용
진기 11(1957)년 9월 24일 이상옥 스승 사직
                     10월 1일 대자(김후학) 스승 남산동에서 부임
진기 18(1964)년 3월 30일 심인당 명칭을 능인으로 개칭
진기 27(1973)년 11월 27일 심인당 개축 헌공 불사
진기 31(1977)년 4월 13일 홍일정(윤종숙) 스승 교화보조 임명
진기 33(1979)년 1월 31일 홍일정 스승 득도심인당으로 전출
진기 38(1984)년 1월 30일 효운(이종관) 스승 교화보조 임명
진기 40(1986)년 10월 2일 효운 스승 선혜심인당으로 전출
                      12월 24일 일정(현성하)·자각정(유순자) 스승 명선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59(2005)년 12월 29일 일정·자각정 스승 기로진원
                                  회성(김봉갑)·정각주(박인순) 스승 불정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63(2009)년 12월 26일 회성·정각주 스승 시경심인당으로 전출
                                 상명(송귀영)·서원명(곽형종) 스승 정정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64(2010)년 8월 24일 상명·서원명 스승 안산심인당으로 전출
                                 수각(김치원)·선법지(곽영진) 스승 성진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67(2013)년 10월 29일 수각·선법지 스승 밀각심인당으로 전출
                                 수혜(손석대)·법신생(이은주) 스승 교석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69(2015)년 8월 23일 창건 60주년 기념불사 봉행
진기 74(2020)년 4월 14일 본존장엄가지불사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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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기자 san108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