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언의 산실-황경심인당

밀교신문   
입력 : 2020-04-20  | 수정 :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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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 경주 남부지역 교화를 책임졌던 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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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사에서 진기 9(1955)년은 교육을 비롯해 교화, 복지, 경제 등에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 해다.

 

진기 9년은 심인중학교가 설립돼 정부로부터 공식 인가(48)를 받은 해다. 초대 교장에는 당시 청구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운범 강복수(당시 강창호) 박사를 임용했다. 초기 학교 인가 및 초석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를 했던 강복수 박사는 첫 졸업생을 배출하기 전 청구대학교의 전임교수가 되어 학교로 돌아갔다.

 

회당 대종사는 어려운 여건에도 교단의 교육에 상당한 관심을 가져 스승 양성기관인 심학교를 진기 7(1953)12월에 처음 시도했으며 진기 91227일 대구시 남산동 희락심인당 등 지방 주요 심인당에 개설됐다. 그리고 교화 방편으로 서원가의 실시도 이때 시작됐다. 이시기 교화방편의 일환으로 서원가도 실시되었으며 그 후 작곡 기술상의 문제로 일시 중단하였다가 부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종단의 법적 명칭을 대한불교진각종 보살회로 통칭은 심인불교’, 교당 명은 심인당으로 결정하고 종단의 이미지를 쉽게 알리기 위한 방안으로 교표를 제정했다. 교표는 불교의 표식인 만()자로 했으며 남산동 희락심인당과 영등포 능인심인당, 괴동 신락심인당에 설치했다. 그러나 만자 표식의 깃대가 부러지는 등 법문이 생겨, 진기 12(1958)630일 일원상으로 바꿔 서울 밀각심인당과 심인중학교 옥상에 설치했다.

 

종단 자료에는 무상주의의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표식이라는 방편을 사용한 것은 법난의 원인 중 하나가 유사 종교단체라는 오해였으므로, 종단이 불교임을 알리려는 조치였다. 그러나 이 표식들은 교리와 관련이 없어서 폐기되었다가, 회당 대종사 열반 이후에 금강륜(金剛輪), 곧 대일상(大日相)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 비산동에 건립된 직포공장이 24일 준공돼 삼정직조공정(三淨織造工場)을 명명했다. 이는 종단 최초로 직영하는 수익사업이었다. ‘삼정은 세 가지의 정재(淨財)라 의미로 삼보전에 공양 된 재원으로 마련된 불사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한 명칭이었다. 회당 대종사가 수익사업으로 직포공장을 설립한 가장 큰 이유는 학교 설립에 필요한 재원을 스승과 신교도에게 부담을 지울 수 없어서 자금을 출연하여 별도의 업체를 건설하고 경영이윤을 지원하고자 했다.

 

종헌이 제정되고 종립학교를 설립하는 등 종단의 교세가 신장하자 회당 대종사는 교직자와 신교도의 예우도 이루어졌다. 종헌의 초안을 잡기도 했던 자비인(김희옥) 스승을 입헌 원로 스승으로 추대하고, 수행이 앞서가는 신교도를 위한 법로장(法老長) 제도를 마련해 원로 신교도들을 우대하기도 했다. 또한, 교화하지 않은 정사의 부인을 화도(化導) 스승이라 호칭해 교화에 참여시켰다.

 

진기 9년에 설립된 심인당은 금호심인당(23·진불·폐쇄) 울릉 현포심인당(311·폐쇄) 불국사심인당(320·황경) 영등포심인당(822·능인) 온천심인당(1124·화친·폐쇄) 유천심인당(1226·진속·폐쇄) 등이다.

 

이번 호에는 불국사심인당(황경심인당)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네스코가 세계 10대 유적 도시로 지정한 천년고도 경주에 위치한 황경심인당(경북 경주시 천사 36)은 진기 9(1955)320일 개설됐다.

 

경주시 자료에 따르면 황경심인당이 개설된 1955년에 경주읍이 경주시로 승격되었으며, 경주군이 월성군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월성군이 다시 경주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1월 통합 경주시로 출범했다.

 

황경심인당은 도로명으로 주소가 변경되기 전에는 구정동이었다. 이곳은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정승이 아홉이나 배출되었다 하여 구정리라 불렸다.

 

불국로(구정동 불국사역 앞 삼거리양북면 장항리) 도로변에 있는 황경심인당은 주변에 천년고찰 불국사를 비롯해 사적 제350호 구정동 고분군과 사적 제72호 구정동 방형분 등 유명한 유적지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불국사와 황경심인당과의 거리는 약 2.6, 자동차로 4분 정도 소요된다.

 

황경심인당 맞은편 경주온천관광호텔 뒷산의 원형 구릉 정상부에 있는 구정동 고분군(古墳群)은 면적 5,7661951년에 동검·말방울과 같은 철제품이 수습된 후, 1982년에 국립 경주 박물관에서 발굴했다. 3개의 덧널무덤 가운데에서 제2 무덤과 제3 무덤은 부부 합장 무덤으로 추정된다. 와질 토기와 도질토기가 함께 출토됐다. 구정동 방형분(方形墳)은 통일신라 때의 무덤의 형태가 모두 외부가 원형분인데 비해 유일하게 정사각형의 방형분이다. 한 변의 길이가 9.5m, 높이가 약 3m이며, 봉분 아래에 호석(護石)을 설치했다. 경주에는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는 무덤이 대릉원 천마총과 장산토우총 그리고 구정동 방형분 등 세군데 있다.

 

황경심인당은 개설 당시, 주교가 임명되기 전까지 교도들 스스로 수행해 왔던 곳 중에 하나다.

 

스승이 임용돼 본격적으로 교화가 시작된 것은 진기 14(1960)12월 실지월(김도점) 스승이 임용되면서부터다. 실지월 스승은 진기 34(1980)8월 기로진원 때까지 20년간 이곳 황경심인당에서 교화에 매진했으며 진기 39(1985)97일 열반에 들었다. 실지월 스승 후임으로 진기 35(1981)6월부터 진기 44(1990)11월까지 통리원장과 총인을 역임한 회정(김상균심상정(염명순) 스승이 9년간 맡으면서 교화에 힘썼다. 이 시기 황경심인당이 본격적인 대중 교화를 펼치는 계기가 마련됐다. 회정·심상정 스승 후임에는 현재 종의회 의장 소임을 맡은 관천(김재민육행수(서재금) 스승이 임용돼 진기 50(1996)3월 경전심인당으로 전출 가기까지 6년간을 책임졌다.

이후 진기 56(2002)11월까지 정효(최윤철묘진주(장순득) 스승이, 진기 65(2011)12월까지 항정(마광덕혜안륜(곽미애) 스승이, 진기 71(2017)11월까지 신혜(박태헌정백심(최유화) 스승이 교화를 이어갔다. 현재는 종의회 부의장 경일(김철원직심정(김백진) 스승이 신익심인당에서 부임해 교화에 매진하고 있다.

 

 

황경심인당

 

진기 9(1955)년 3월 20일 주택 임차해 심인당 개설, 신교도 자수
진기 14(1960)년 12월 5일 실지월(김도점) 스승 임용
진기 15(1961)년 1월 15일 심인당 사택을 신축
진기 18(1964)년 3월 30일 심인당 명칭을 황경으로 개칭
진기 34(1980)년 8월      실지월 스승 기로진원
진기 35(1981)년 6월 27일 회정(김상균)·심상정(염명순) 스승 임용
진기 38(1984)년 12월 19일 심인당 사택 및 자성학교 개축
진기 44(1990)년 11월 20일 회정·심상정 스승 지륜심인당으로 전출
                                   관천(김재민)·육행수(서재금) 스승 임용
진기 50(1996)년 3월 28일 관천·육행수 스승 경전심인당으로 전출
                                  정효(최윤철)·묘진주(장순득) 스승 임용
진기 56(2002)년 11월 25일 정효·묘진주 스승 정지심인당으로 전출
                                  항정(마광덕)·혜안륜(곽미애) 스승 항자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65(2011)년 9월 29일 본존장엄가지불사 봉행         
                     12월 27일 항정·혜안륜 스승 보불심인당으로 전출
                                  신혜(박태헌)·정백심(최유화) 스승 보불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71(2017)년 11월 28일 신혜·정백심 스승 대명심인당으로 전출
                                   경일(김철원)·직심정(김백진) 스승 신익심인당에서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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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기자 san108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