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

문윤정(수필가)   
입력 : 2004-07-27  | 수정 : 2004-07-27
+ -
인사동은 사람들로 붐볐다. 거리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점술인이 나를 잡더니 손님도 없고 심심해서 공짜로 봐 주겠다고 하였다. 공짜라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좋은 점괘가 떨어지면 좋겠지만, 좋지 않은 소리를 듣게 되면 그 말이 가슴을 차지하게 되니 안 들은 것만 못하다. 마치 점술인이 예언한 불길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괜스레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게 된다. 친정어머니는 새벽이면 집에서 예불을 올리는 불자이면서도 점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자신 스스로가 노력해야 만이 이루어지는 일이고 또한 자신 스스로가 결정을 내려야 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 생기면 어머니는 점쟁이에게로 달려간다. 점쟁이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면 어머니가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몇 집을 돌기도 한다. 자식을 넷이나 둔 어머니는 점쟁이 집을 드나드는 횟수가 점점 잦아진다. 큰사위가 사업을 시작했으니, 작은 딸이 집을 구입한다고 하니, 막내아들이 사무실을 확장한다고 하니 등등 이런 사소한 이유로도 점쟁이 집을 찾는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평생 동안 점쟁이 집을 드나들면서 얻은 결론을 이렇게 말씀하였다. "점쟁이가 해 준 처방도 소용없고, 많은 돈 들여 무당에게 굿을 해도 다 소용없더라.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말더라. 내가 받아야 할 과보라면 피할 수가 없는가 보더라."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 "너희들은 아예 점 집에 드나들지 마라. 삿된 것인 줄 알면서도 습관이 되어버려 사소한 일에도 자꾸 가게 되더라." 세상일이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또 무당의 한 바탕 요란한 굿 때문에 세상살이가 순조롭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어느 시공간에서 어떤 인연으로 해서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 불가능한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모든 것이 이미 예견되어 있고 결정 지워져 있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로 시들하고 재미없을 것이다.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생기로 가득 차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다행히도 우리가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으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어난 일은 언젠가는 그 끝이 있다는 것이다. 그 끝에 희망의 열매 혹은 절망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