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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開發)이라는 질병

이경자(소설가)   
입력 : 2004-07-08  | 수정 : 200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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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강원도로 가는 길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영동고속도로를 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도를 따라가는 것이다. 고속도로로 가면 대관령을 지나서부터 멀리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고속도로 통행세 내는 곳을 지나면 이내 양양 땅이다. 그곳 초입에 잘 가는 횟집이 있다. 옛날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생선으로 회를 떠서 먹었지만 요즘은 그런 것은 수입한 것과 양식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지금은 그저 '잡어'라고 부르는 생선으로 회를 떠서 먹는다. 이 고속도로말고 국도는 내륙으로 가는 것인데 홍천과 인제, 원통을 지난다. 그래서 한계령을 넘으면 양양 땅이다. 지난달 중순에 백담사의 만해마을에서 문학강연이 있어 그곳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보니 또 다른 도로가 뚫리고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사춘기일 적에 이 길을 통해 서울로 가자면 열두 시간이 걸렸다. 하루에 한 번, 새벽 4시 넘어 떠나는 버스정류장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가방도 없이 보퉁이를 졸망졸망 싸들고 계란을 삶아 점심 요기로 찔러주면서 하염없이 울던 어머니들. 요즘은 어디에도 그런 정감어린 풍경은 없다. 그 길이 이제 4시간만에 오갈 수 있도록 빨라졌다. 옛날엔 길가 여기저기에 해골을 그려놓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빨리 달리면 범칙금이 무서운 것이다. 그렇게 빨라진 그 길을 더 빠르게 오가고 싶다고 산을 깎고 논밭을 메우고 강에 다리를 놓는다. 2시간대로 서울을 오가는 길을 뚫는다는 것이다. 산의 중턱이 허물어져서 벌건 흙을 드러낸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쓰라렸다. 산도 생물인데 저렇게 마구 파헤쳐지면 생물이 살아갈 수 있을까. 산이라는 생물이 살 수 없는 세상은 사람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지구에 목숨 붙이고 사는 생물은 그것이 어떤 종이든 모두 얽혀있기 때문이다. 얽혀 있는 생물체의 어디가 병들면 다른 부분도 영향을 받는다. 자연으로부터 사람을 분리해 내는 사람의 탐욕으로 자연을 유린하는 이런 개발. 나는 그 개발의 현장을 보면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산과 나무와 풀과 돌과 물에게 부끄러워서. 벌과 나비와 새들에게 미안해서. 이쯤에서 진정으로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덜 먹고 덜 가지고 덜 편안해지는 삶의 방식에 가치를 두어보자. 거기에서 삶의 평화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