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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자리이타의 실천,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밀교신문   
입력 :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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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할머니 한 분이 위암에 걸렸어요. 병원에서 수술을 했지만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의사가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할머니, 집에 가서 쉬시다가 편안하게 하늘나라에 가세요!”

 

할머니는 집에서 죽음을 준비하면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강도가 들었어요. 강도가 할머니에게 칼을 들이대고 돈만 주면 살려준다! 돈만 주면 살려 준다!”하고 소리쳤지요. 그러자 할머니가 벌떡 일어서더니 강도의 뺨을 세차게 때리며 외쳤습니다.

 

이놈아! 내가 위암 말기인데, 의사도 못 고치는 병을 너 같은 강도 놈이 어떻게 고치겠다는 게야?!”

 

강도는 성난 할머니에게 두들겨 맞고는 줄행랑을 치고 말았습니다.

 

상대가 위암 말기인 줄도 모르고 살려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뺨을 맞고 도망쳐버린 이 강도 얘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상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은 어떤지, 마음에 어떤 고민이 있는지, 늘 관심을 쏟고 걱정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배려겠지요.

 

우리는 과연 상대에게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습니까? 또 상대의 얘기를 얼마나 잘 들어주고 있습니까? 불교적으로 볼 때 정말로 잘 산다는 건 자리이타에 충실한 삶을 의미합니다. 나도 중요하지만, 상대를 챙기는 일은 더더욱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요.

 

남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강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강의에서 가장 힘들 때가 청중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라고 합니다. 어느 강사가 한번은 공무원 단체를 대상으로 강의를 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도 무표정하게, 심지어는 근엄한 표정으로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더래요.

 

진땀을 흘리면서 강의를 진행하는데 뒤쪽에 앉아 있던 청중 한 명이 자신의 강의에 반응을 보이더랍니다. 이야기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더라는 거지요. 그때부터 갑자기 힘이 샘솟기 시작해서, 덕분에 무사히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마운 마음에 강의가 끝나고 나서 그 사람에게 찾아가 악수를 청했더니, 그 사람이 부끄러워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래요.

죄송합니다. 너무 졸려서 눈치 없이 졸았습니다.”

 

강의에 동의해서 고개를 끄덕인 것이 아니라 조느라고 그랬던 것이었지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강사가 악수를 청해 오니까 미안해하면서 고백을 했던 거예요.

 

재물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를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합니다. 그중에 굳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대의 속을 헤아려서 잘 도와주는 것을 찰시(察施)’라고 해요. 남에게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경청하는 사람만이 상대의 속을 헤아려 베풀 수 있어요.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에는 그 말에 귀 기울여 밝은 기운을 전달해 줘야지, 꾸부정하고 복 없는 얼굴로 건성건성 들어서는 안 됩니다.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자식에 대한 애착으로 배가 불러도 고플까, 옷을 입혀도 추울까, 건강해도 아플까 하면서도 남이 고픈 것, 남이 추운 것, 남이 아픈 것에는 무관심하면 태과가 된다. (‘실행론’ 5-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