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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밀교신문   
입력 :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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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으로 보여주는 이웃집 감나무의 감빛깔이 너무나 곱습니다. 잘 익은 과일을 보노라면 그 빛깔이 아름답다기보다 곱다라고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문득 가을입니다. 결단코 끝내지 않을 것 같던 폭염도 어느새 사라지고 쌀쌀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은 너무나 청명하고 곱습니다. 물들어야할 잎들은 모두 노랗고 붉게 물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색깔이 넘쳐나지만 잘 익은 빛, 잘 물든 빛을 당해낼 빛깔은 없습니다. 그 속에는 충분하게 보낸 시간이 있으며 각각의 고운 영혼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순간순간을 충만하면서 잘 익었기에 저리 곱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분주하면서도 영혼을 내려놓지 않은 사람은 곱습니다. 잘 익은 사람의 영혼은 과일 향기보다 달콤합니다.

 

연보랏빛 향기가 물든 구절초 꽃 위에 빨간 고추잠자리가 내려앉았습니다. 바람이라도 불면 훨훨 날아갈 듯 씨앗을 품은 씀바귀 하나가 담벼락에 옹색하게 뿌리를 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 풀 한 그루도 지난 무더위와 태풍을 견뎌내고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원추리, 질경이, 도라지 등, 내가 심었거나 심지 않은 모든 풀들이 지난여름의 지독한 폭염을 견뎌내고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여린 잎부터 가느다란 가지, 뿌리들까지 세찬 빗줄기를 이겨냈습니다. 가을바람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나무와 풀들이 뿌리 하나로 땅을 움켜잡고 질러대던 소리 없는 비명을요.

 

추수를 끝낸 빈 대추나무가 있는가 하면 아직 조롱조롱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도 보입니다. 뿌리가 견딜 때 잎도 견뎠습니다. 잎이 견딜 때 꽃이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견딘 꽃은 대추 열매가 되어 다시 비바람을 견뎠습니다. 대추보다 큰 사과나 배는 얼마나 더 견디기 힘들었을까요?

 

그 혹독한 시간을 지나 소슬한 가을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나무와 풀들이 참 대견합니다. 담장 아래 초라한 몰골로 자리하고 있는 씀바귀는 더더욱 대견합니다. 한 알의 열매와 씨앗은 그냥 저절로 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들을 견디고 이겨냄으로써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 송이 가을꽃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거센 바람과 타들어갈 듯한 폭염 속에서 그들이 감내한 인내와 살아 완성하겠다는 절절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날씨가 늘 좋으면 땅은 사막이 된다.’는 스페인 속담이 있습니다. 고통의 비, 실패의 폭풍, 절망의 눈보라가 몰아쳐야 삶 또한 사막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겠지요. 그러나 대추나무 홀로, 씀바귀 홀로, 감나무 홀로 그 모든 것들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즈음,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가요를 듣습니다. 김현성 시인이 쓴 고운 가사에 윤도현이라는 가수가 마음을 담아 부른 노래입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걸 보네./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시인은 우체국 앞에서 그리운 이를 기다리면서 문득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저 홀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에워싸고 있는 것들에 기대어 고운 빛을 낸다는 사실을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의지하고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저 홀로 이룬 것은 없습니다. 저 홀로 고울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있었으니 저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저 홀로 견디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누군가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편안함 뒤에는 그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지원해준 존재가 분명하게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범부는 이 몸을 아()라고 하고 외도(外道)는 일체제법(一切諸法)에 대하여 실아(實我) 실법(實法)으로 잘못 생각한다.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인연화합(因緣和合)으로 생()한 것이어서 법의 실체도 없다. 이를 무아(無我)라 한다. 인간존재는 인과적(因果的) 시간관계로는 삼세(三世) 동일존재(同一存在)이고 인연적 공간관계로는 시방(十方) 동일존재이다.”(실행론 2,11,3)

 

덕일 정사/보원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