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23.걷다

밀교신문   
입력 : 2018-10-08  | 수정 : 2018-10-08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

일평생을 걸어 다닌 부처님


thumb-kakaotalk_20170814_094604632_220x.jpg

시간이 날 때면 절을 찾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모든 불상은 다 앉아 있는 자세일까?’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절에서 모시고 있는 불상 대부분은 좌상입니다. 두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반듯하게 두 발을 맺고 앉은 모습이지요.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바로 그 순간이 부처님이라는 존재를 가장 잘 말해준다고 생각해서 그리되었을까요? 무엇보다 참선하는 모습이 가장 부처님다운 모습이라 생각해서 그리되었을까요? 아니면 유달리 좌식문화가 굳건하게 자리한 한국이라는 공간의 특성 때문일까요?

 

하긴,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아유, 좀 앉자!”

일단 앉아 봐!”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으시오. 보고 있는 내가 불안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유독 앉기를 좋아하는 문화여서 불상마저도 그렇게 앉히려는 건 아닐까 하는 좀 엉뚱한 상상도 해봅니다. 이 부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는 손모양(수인)으로 알 수 있습니다. 참선의 경지에 들어계신다거나, 다섯 비구들에게 처음으로 법문을 설하신다거나, 모든 중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베푸신다거나, 중생들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없애고 계신다거나. 수인으로 우리는 가만히 앉아 계신 부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다고 읽어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와불도 많이 모시고 있습니다.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우신 모습입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두 발이 가지런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그 와불상이 열반상이냐 아니면 단순히 쉬고 계시거나 주무시고 계신 모습의 불상이냐로 나뉜다고 설명합니다. 와불상은 대체로 아주 커다랗게 조성되고 있습니다. 베개에 오른팔을 대고 누우신 부처님을 뵙자면 고단한 윤회를 끝내고 영원한 휴식에 들어가신 듯 안온해보입니다.

 

물론 서 있는 불상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 있는 불상도 가만히 서 계신 모습입니다. 서계시거나 앉아계신 부처님, 혹은 누워계신 부처님이 우리가 늘 뵙는 불상입니다. 굉장히 정적(靜的)입니다. 멈춰있습니다. 정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적막이 흐릅니다. 불상을 마주 대하자면 지금까지 바삐 살아왔던 일들을 모두 그만 두고 나 역시 저 불상처럼 동작을 취하고 싶습니다. 그저 쉬고 싶고, 내려놓고 싶습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읽다보면 반대입니다. 조용히 앉아 계신 모습보다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더 많이 나옵니다.

 

부처님은 걸어갑니다. 늘 어딘가를 향해서 걸어가십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탁발을 하러 마을로 걸어 들어가고, 탁발을 하기 위해 집집마다 다니시고, 탁발을 마치면 마을을 걸어 나옵니다. 한낮의 휴식과 명상을 위해서 나무나 숲을 찾아 걸어가고, 어딘가에서 열심히 수행하고 있을 제자를 찾아 걸어가시고, 깨달음을 이룰 기미가 느껴지는 범부가 있으면 그곳을 찾아 부지런히 걸어가시고, 선정에 머물러 계시다가 몸을 풀기 위해 하는 동작도 일정한 공간을 걸어 다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걸음을 멈추는 시간은 한낮의 휴식을 위해 나무 아래에 머물고 계실 때나, 늦은 밤 제자들과 하늘의 신들이 모두 사라진 다음 홀로 한밤의 휴식을 취할 때입니다. 이런 부처님을 떠올리자면 부처님의 삶은 굉장히 동적(動的)이란 생각이 듭니다. 늘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대화를 나누고, 가르침을 들려주고, 또 어딘가를 향해 길을 나섭니다. 부처님 재세시 그 곁에 머물렀다면 다리가 무척 아팠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쉬지 않고 걸어다니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불교국가에 가면 걷는 불상(walking buddha)’을 이따금 만납니다. 인도 나그푸르에 위치한 나가로카센터에도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좌정해 계시는 부처님과 달라 활력이 느껴집니다. 저 발걸음으로 우리가 사는 세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시는 것 같습니다. 금방이라도 부처님을 마주칠 것만 같습니다.

 

왜 이렇게 걸으셨을까요? 특정한 공간에 가만히 머물러 계시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법문을 들려주기만 하셔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지요. 비가 많이 내리는 안거 기간에는 그리하셨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안거를 마치면 부처님은 또 길을 떠났습니다.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을 뵙게 되어 반가웠을 테고,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인 줄 모르고 지나쳤을 테지요. 어떤 사람들은 우연히 만난 부처님에게서 가르침을 전해 듣고 삶이 달라졌을 테고,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들어도 흘려 듣고 심지어는 곡해하거나 비난하기도 했을 테지요. 아무튼 부처님은 걸으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걷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부처님은 수레나 동물의 등에 올라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대로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언제나 당신의 두 발로 걸어가십니다. 늘그막에는 수레를 타고 다니셔도 좋았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신자가 된 왕과 귀족들, 그리고 부호들이 셀 수 없이 많아서 그들로부터 수레를 제공받을 수도 있었을 테지요. 그런데 부처님은 걸어 다니셨습니다. 심지어는 반열반하시는 바로 그날까지 부처님은 당신의 두 발로 걸어가셨습니다. 초기경전인 대반열반경을 보면, 부처님은 당신의 병들고 늙은 육신을 다 부서진 수레를 가죽끈으로 동여매고 억지로 끌고 가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드문드문 격렬한 병고에 시달리다가도 통증이 잦아들면 또다시 아난을 앞세우고 길을 떠나십니다. 그런 와중에 대장장이 춘다가 올린 음식을 드시고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도 부처님은 당신의 두 발로 다시 걸어가십니다. 쿠시나가라의 두 그루 사라나무가 자라나 있는 곳에 이른 뒤에 아난에게 자리를 펴게 하고 누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새벽에 걸쳐 세속과의 인연을 영원히 놓으시지요. 그날 이후 이 세상은 당신의 두 발로 길을 나서서 걸어가시는 부처님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걸 보면 부처님께서 한 생을 다 사셨다는 것은 다 걸으셨다’, ‘더 이상 걷지 않는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그런 면에서 부처님은 걷는 성자입니다.

 

부처님 걷기의 두 번째 특징은, 걸음을 걸을 때의 자세입니다. 초기경전인 맛지마 니까야》〈브라흐마유의 경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걸음걸이를 이렇게 그립니다.

 

존자 고타마는 걸을 때 오른 발을 앞으로 먼저 내딛습니다. 그런데 그 보폭이 길지도 짧지도 않습니다. 걸을 때는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습니다. 또 무릎과 무릎이 맞부딪치거나 복사뼈끼리 스치지 않습니다. 존자 고타마는 걸을 때 넓적다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으며, 오므리지도 벌리지도 않습니다. 걸을 때에는 하반신만 움직입니다.  

 

그리고 몸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중략) 또한 서두르거나 느릿느릿 걷지도 않습니다. 어딘가에 묶였다가 풀려난 사람처럼 걷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진리를 들려주면 사람들은 크게 기뻐합니다. 환희로 충만한 사람들과 헤어진 뒤 부처님은 다시 길을 걷습니다. 오른 발을 들어 앞으로 내밀고, 이어서 왼 발이 대지에서 다소 떨어지고, 왼쪽 다리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왼쪽 발이 대지를 딛는 순간 오른 발이 대지에서 들어 올려집니다. 그렇게 부처님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법문을 잘 마쳤다. 이제 홀가분하다.”

런 생각조차도 들어있지 않은 발걸음입니다. 담담한 마음으로, 당당하지만 위세를 부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성큼성큼 걷지도 않습니다. 종종걸음은 더더욱 아닙니다. 부처님의 걸음걸이를 상상해보자면 마치 구름에 달 가는 듯한 실루엣이 떠오릅니다. 길을 걸어가면서 좌우를 살피느라 고갯짓도 하지 않습니다. 상반신은 반듯하게 세운 채 흔들지 않고 시선을 앞 어디쯤에 내려놓고서 하반신만 차분하게 대지를 딛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일정에 쫓겨 다니는 사람들의 자세를 보면 부처님의 걸음걸이와 참 다릅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좀비족이 있는가 하면, 급한 마음에 상대방 구두 뒤축을 자꾸 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빨리 빨리가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걸음걸이 자세는 몸이 앞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가끔은 부처님처럼 걸어보는 것도 여유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계속)

 

23. 걷다1사본 -20180927.jpg

이미령/불교방송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