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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겸인(勞謙人)

밀교신문   
입력 :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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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을 쌓는다.’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덕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덕은 어떤 덕일까, 무엇이 인간 최고의 선일까? 중국의 오래된 고전의 하나인 역경(易經)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노겸(勞謙), 군자유종길(君子有終吉)” 부지런히 일하여 공로를 세운 다음에 겸손하면 반드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모든 것이 길하고 좋다는 뜻입니다.

 

공을 세우고 나면 자기의 공을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만, 그 공을 자랑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노겸인입니다.

 

황희 정승과 함께 조선조의 명재상으로 이름 높인 맹사성의 일화입니다.

 

열아홉에 장원급제하고 갓 스물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 가득하였습니다. 어느 날 선정을 베풀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선승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사는 나쁜 일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하라는 상식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맹사성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말을 건네는 선승이 못 마땅해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 선사가 녹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권하자 맹사성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습니다. 선사는 맹사성의 찻잔에 물이 넘치도록 따랐으며, 맹사성은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신다고 선승에게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선승은 맹사성에게 일갈(一喝)했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 적시는 건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선사의 말에 맹사성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방을 나서다 문틀에 이마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빙그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맹사성은 자만심을 버리고 겸양지덕을 몸에 익히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겸손할 ()은 말씀 언()에 묶을 겸()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말을 묶어 둔다는 뜻으로 말을 할 때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 즉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 한자입니다. 겸손은 무조건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존중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진정한 소통의 방식입니다.

 

역경에 의하면 우주와 인생에는 64기의 괘()가 있다 합니다.

 

인간의 장점에는 반드시 그림자처럼 단점이 따라 다닙니다. 재주가 있는 사람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기 쉽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구설수를 일으키기 쉽고, 힘이 센 사람은 남과 다투기를 잘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돈 때문에 불행해지기 쉽고, 권력가진 사람은 권력 때문에 무너지기 쉽고....

 

이처럼 자기의 장점이나 특기가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64괘중에 단점이나 결점이 없는 괘가 오직 하나있는데, 그것은 바로 ()입니다. 겸손이라는 괘는 끝까지 좋은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어디를 가도 적이 없고, 남의 미움을 사지 않으며 남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노겸인!”

 

얼마 전 이생에 인연을 다하고 법계로 돌아가신 아버님 우승 정사님을 떠올렸습니다.

 

27년 전 아버님과 같이 교화를 하면서 어느 날 문득 교화가 무척 어렵다는 생각에 아버님, 어떻게 하면 교화를 잘하게 되는지요?” 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글쎄, 나는 배움도 짧고 그릇도 작아 큰 교화를 못했어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자행화타(自行化他)’ 즉 내가 먼저 실천하여 남을 제도한다라는 생각으로 교화를 했어요. 전수님은 나보다 배움도 많고 그릇도 크니 큰 교화의 원을 세워 보세요.”

며느리인 전수이지만 한 번도 하대(下待) 하신 적이 없이 늘 전수님하고 경어를 써주시며, 항상 말없이 심인당 안팎의 일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시며 염송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 우승 정사님! 주위 어떤 분을 대하여도 교만하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낮추며 살아오신 모습 그대로 주위를 환하게 비쳐주신 아버님의 덕은 겸손하라는 가르침으로 자손들과 교도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재주를 존중하면 흩어지고 덕을 존중하면 모인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붙고 사람이 붙으면 토지가 붙고 토지가 붙으면 재물이 붙는다. 사람이 붙지 않으면 덕이 부족한 탓이다. 재물은 먼 곳까지 지고 가되 많아도 다함이 있지만 복덕 성품은 넉넉한 것이어서 언제나 부족함이 없고 다함이 없다.”(실행론 5-5-4)

남보다 나은 위치와 조건을 갖추었다고 으스대며 오만방자한 행동으로 남을 업신여기고 깔보는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 노겸인의 삶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요, 최고의 미덕이 되는 것입니다.

 

심법정 전수/유가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