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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금강광보살(金剛光菩薩)

밀교신문   
입력 : 2018-09-14  | 수정 :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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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을 몸으로 하는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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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이면 전국에서 해맞이하는 인파들이 바닷가나 산 정상에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새벽에 동쪽하늘에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세상을 덮은 어두움을 불태우듯이 서서히 광명으로 바꾸어놓는 광경이다. 광명은 어두움을 물리치며 어둠 속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태양이 서서히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어두움 속에 잠들었던 수많은 중생들, 즉 야행성 동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식물은 따뜻한 햇살이 비춰올 때에 깨어난다. 그리고 그들은 태양의 광명이 빛나는 동안에 활발한 신진대사를 행한다. 광명은 이처럼 뭇 중생들을 깨어나게 하고 자라나게 한다.

 

광명은 스스로 밝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광명을 반사하는 모든 것으로 하여금 더욱 빛나게 한다. 맑은 이슬, 고요한 호수, 밝은 거울 등 밝은 광명 아래에서 빛나는 모든 것들은 깨끗한 것이다. 광명은 청정과 어울려서 그 광명이 널리 퍼져나간다. 즉 광명에는 청정의 의미와 확산의 의미가 함께한다. 그리하여 해가 밝게 빛나는 광명 아래에서는 자신과 타인, 다른 사물들을 분별하여 알아챌 수 있다. 광명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선명하므로 우리는 이것과 저것을 분명히 알아챌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지혜를 닦을 수 있다. 광명은 이처럼 지혜를 가져다준다.

 

이와 같이 광명은 어두움을 밝히고 중생들을 불러오는 의미, 깨어나게 하고 자라게 하는 의미, 청정하여 일체를 분별하고 지혜를 가져오는 의미 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의미는 부처님의 법을 닦을 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불법을 만나는 순간 중생들은 그 법문을 듣기 위하여 모여든다. 흔히 번뇌망상을 어둠에 비유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광명에 비유하듯이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의 자심을 가리킨다. 진각교전에 뉘가 허물 없으리요 고치는 자 착하도다라고 하는 것처럼 자심이 광명으로 밝아올 때에 그 광명을 가리고 있던 탐진치의 번뇌는 걷어진다. '대일경'에서 설하는 여실지자심이란 바로 자심본성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자심본성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본심을 말하는 것으로 자성법신이라 한다. 어떠한 중생이라도 다 본심을 갖고 있으나 탐진치의 번뇌망상이 본성을 가리어서 그 광명을 못보게 하고 있다. 따라서 그 누구를 막론하고 탐진치 번뇌 망상을 걷어 없애면 본성의 광명을 볼 수 있게 된다. 태양이 솟아올라 광명을 비추는 것은 본성의 광명을 보는 것으로 이 광명을 보고자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 법을 통하여 깨어나고 그 가르침에 의해 우리의 정신세계는 고루 성장한다. 불법의 광명 덕분에 지혜를 갖추며 불법을 닦아나갈수록 중생들은 점점 청정해진다. 이처럼 불도를 닦는 수행자는 불법이라는 광명을 체험하는 순간부터 성불의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불법과 광명은 이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기에 부처님이나 불법은 종종 세간을 밝히는 광명에 비유되곤 하였다. 경전에는 중생들이 부처님을 한목소리로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고 입에서 한없는 백천 광명을 내시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부처의 32가지 거룩한 모습의 하나로서 백호상이 있는데, 부처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을 의미한다. 깨끗하고 부드러워 미세한 향과 같으며, 오른쪽으로 말린데서 끊임없이 광명을 방사한다고 한다. 이처럼 부처님의 광명이 세상을 비춘다는 것은 그 지혜로 인해서 어둠과 같은 어리석음을 깨고 밝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비유로 광명이 사용된 것이다.

 

광명은 무수한 여래의 명칭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미타경에는 아미타여래에 대하여 그 수명이 무량하므로 무량수불이요 광명이 무량하므로 무량광불이라 하였으니, 아미타불은 한량없는 광명을 지니고 중생의 번뇌의 어둠을 밝히는 한편 한량없는 생명을 지녔기에 생멸이 없는 부처님이란 뜻이다. 비로자나부처님도 광명변조변조왕여래, 또는 변조라고 하듯이 무한한 신체의 광명, 지혜의 광명이 법계에 두루 비추어 둥글고 밝은 것을 의미한다.

 

광명 가운데에는 보배처럼 찬란한 광명이 으뜸이다. 보생여래는 말 그대로 보배를 생하게 하는 여래로서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불성이라는 귀한 가치를 내어쓰도록 일깨워주는 여래이다. 보생여래의 광명은 그 빛이 체계적으로 세간에 골고루 나투어지도록 보생여래를 둘러싸고 있는 네 보살로서 전개된다. 그 보살 가운데 첫번째인 금강보보살의 관정에 의해 중생들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본래의 보배인 성불의 가능성을 발견한 다음에, 두 번째로 금강광보살은 광명으로서 중생의 무명과 어리석음의 암흑을 깨뜨리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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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경'일체여래의 일륜광명대묘광은 금강광이다라고 표현되는 금강광보살은 여러 경전에서 금강위덕보살’, ‘대위광보살이라 하며 밀호는 위덕금강이라 칭한다. 보생여래의 위광의 덕을 맡아서 모든 부처님의 치염한 위광을 경례하는 보살이기 때문에 백팔명찬에는 금강위덕·금강의 태양·가장 뛰어난 빛·절대적인 빛남·금강의 광휘·절대의 위덕등이라는 명칭으로 금강광보살의 덕이 찬탄된다. 이들 명칭의 공통점은 무한한 광명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금강정경'에서 이 보살의 출생을 밝힌 문단은 다음과 같다.

 

이때에 세존은 다시 대위광대보살삼매에서 출생한 보배 가지의 금강삼마지에 들어간다. 이것을 일체여래의 광명삼매라 이름한다. 곧 일체여래심이다. 일체여래심으로부터 나오자 마자 곧 저 덕을 갖춘 지금강은 숱한 태양을 이루고, 출현하고 저 금강일륜[태양]의 형상으로부터 일체세계의 극히 미세한 티끌처럼 많은 여래상을 내어서 일체세계에 널리 시여한다. 저 크고 오묘한 광명의 성품은 금강살타삼마지에서 아주 견고한 까닭에 합하여 한 몸이 되어, 대위광대보살의 몸을 출생한다.”

 

이 글에서 크고 위력있는 광명을 가진 대보살은 일체여래의 광명삼매에서 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금강광보살은 광명에서 출생하였으므로, 그 자체 광명이면서 금강일륜을 그 삼매야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세간의 뜨고 지는 태양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하나밖에 없는 세간의 상대적인 태양이 아니라 절대의 태양을 금강일륜이라 하는 것이다. 세간의 태양은 낮에만 자라나게 할 뿐이지만 여래의 태양은 낮과 밤의 구별없이 모든 어두움을 없애어 모든 일을 성취하게 하는 영원성과 끝없이 계속 비추는 활동성이라는 세 가지 점을 지니고 있어서 세간의 태양과 다르다.

 

'성위경'에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비로자나불은 내심에서 금강위광삼마지지를 증득한다. 자수용인 까닭에 금강위광삼마지지로부터 금강일광명을 유출하여 널리 시방세계를 비추고, 일체중생의 무명과 어두운 어리석음을 깨어서 대지혜의 광명을 발한다. 돌아와서 한 몸에 거두어져서 일체보살로 하여금 삼마지지를 수용케 하기 위하여 금강위광보살의 형상을 이루고, 보생여래의 오른쪽 월륜에 머문다.”

 

이와 같이 이 보살은 금강계만다라 남방 월륜 가운데 보생여래의 우측, 즉 동쪽에 머무는 보살로서, 중생의 무명과 어리석음을 깨뜨리는 지혜가 의인화되었다. 중생을 위해 불법을 설함에 따라 중생이 미혹을 버리고 스스로 지니고 있는 지혜의 광명을 발휘하도록 돕는 역할이 금강광보살로 표현된 것이다.

 

'금강정경'에는 금강광보살의 오묘한 인계를 결함으로써 부처의 광명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고 그 결인의 공덕을 찬탄한다. 또한